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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생의 문' 그 뒤에 누가 있는가

조회 수 43 추천 수 0 2020.02.27 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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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는 11월 중순이 지나면서 이미 겨울이었다. 류현진이 소속된 프로야구팀 토론토 블루제이스 홈구장 로저스센터도 인적이 드물었다. 세계 최초로 지어진 개폐식 돔 구장 주변에는 벌써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다. 
지하 주차장도 텅 비어 자리가 남아돌았다. 출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 나왔다. 주차장 문을 열고 나오니 바로 로저스 센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두어 시간 쯤 흘렀을까. 일정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아까 나왔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당겼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큰일 났다. 문이 잠겼구나!” 바로 앞에 있는 고객센터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용객이 없는 시즌이라 직원도 없고 출입에 조치를 취한 게 틀림없었다. 인적 드문 주차장 건물은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에서 나가기는 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출입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것 같았다.
“주차 빌딩에 들어가는 입구가 한 군데 열려 있을 것이다. 그게 어딘가 찾아야 하는데ⵈ” 당황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 봤지만 겨울 바람이 건물과 벽 사이로 차갑게 밀어닥칠 뿐이었다.
누군가에 물어보려 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저만치 길 건너 고층빌딩에서 마침 한 사람이 나오더니 이쪽으로 육교를 건너 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 온 그 남자는 한눈에 봐도 ‘부티’가 물씬 풍겼다. 노랑 머리를 단정하게 빚고 양복 정장을 세련되게 차려입은 멋쟁이였다. 외투도 입지 않고 나온 걸 보니 근처에 가는 참이었나보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에 서로 눈이 마주쳐 버렸다. “뭐를 도와 드릴까요?” 신사가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차를 세우고 이 문으로 나왔는데 잠겨 버렸어요.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대답을 듣고는 그가 말했다. “그문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그런데 저 문이 잠겨 버렸습니다.” “확실한가요? 그럴리 없는데ⵈ” “몇번 해 봤는데 안 됩니다.”
그가 문으로 걸어가더니 잡아 당겨 보았다. “참, 안 된다니까 그러네ⵈ” 속으로 혀를 차려는 순간 문이 활짝 열렸다. 남자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친절하게 문을 연 채 기다려 주었다. 몇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얼굴이 화끈 거렸다.
“조금만 더 세게, 한 번만 더, 문을 당겼었더라면ⵈ”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다. 토론토 주차장 빌딩의 육중한 문을 몰라보고 잠긴 것으로 지레 짐작한 것이다. 짧은 생각과 모자른 끈기가 빚은 부끄러운 코미디였다. 내 머리는 내 인생을 맡기기에는 너무 가볍다.
영화 ‘기생충’에 배우 송강호와 이선균이 인디언 추장 분장을 하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부잣집 어린 아들의 생일 파티에서 깜짝 이벤트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리는 곧이어 피투성이 난장판이 된다. 먼 나라, 먼 시간에서 끌어 당긴 장난이 오늘 참혹한 현실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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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지인 장로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이십여 년 전 아들이 대학을 다닐 때 미국 중서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단기선교를 갔단다. 그곳에서 놀랍게도 한인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50년대 주한 미군이던 인디언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와서 보호구역에서 살게 됐다. 몇 년 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수십 년째 인디언 보호구역에 머물며 평생을 보내는 중이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는 알코홀과 마약에 찌들어 있는 원주민이 적지 않다. 영화에 나오는 서부 대자연의 호기와는 많이 다른 실상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을 받으며 세상과 동떨어진 보호구역에서 하루하루를 별의미 없이 보낸다. 누구 탓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인생을 땀흘려 꾸려 갈 동기 자체가 부족하다.
‘왜 여기 이렇게 있느냐?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간곡한 권고에도 그녀는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익숙해진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하고, 보호구역 바깥 세계는 두려운 미지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인디언 보호구역 안과 밖은 미국이라도 같은 미국이 아니다. 몸은 자유였지만 그녀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정반대였을까. 전쟁 직후 파괴와 가난이 가득한 땅에서 보호구역으로 들어간 그녀에게 그곳은 안전지대이었을 수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그녀는 자족과 안식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내 머리로는 알 수 없는 여정이다. 다만 한가지, 소망을 잃고 싶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무한한 기쁨을 준다고 해도 술과 섹스와 야망에만 집착하는 냉담한 피조물들입니다. 마치 바닷가에서 휴일을 보내자고 말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상상하지 못해서 그저 빈민가 한구석에서 진흙 파이나 만들며 놀고 싶어 하는 철없는 아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만족합니다.’
C.S. 루이스가 ‘영광의 무게’에 쓴 구절은 인생의 ‘소탐대실’(小貪大失)을 지적하는 혜안이 담겨 있다. 작은 것에 연연하고 목숨 걸고 살면서 진정 중요하고 귀중한 것을 잃는 어리석음을 얼마나 자주 저지르는지. 한 시간만 가면 햇살이 쏟아지는 푸른 해변에서 마음껏 쉴 수가 있다. 너무나 익숙한 시궁창에서 인생을 몽땅 소비하다 쓸어질 수는 없다. 
눈 앞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져지는 것, 귀로 들리는 것, 입에 들어가는 것, 내 머리로 이해되는 것, 추측이 가능한 것, 당장 이로운 것,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 이런 게 다 나쁜 것일 리 없다.
하지만 구원을 잃는다면, 생명을 잃는다면, 건강을 잃는다면, 몸의 일부를 잃는다면, 가족을 잃는다면, 관계를 잃고, 평판을 잃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화를 잃고, 안정을 잃고, 안식을 잃고, 사랑을 잃고, 우정을 잃고, 기쁨을 잃고, 감사를 잃는다면 계산이 잘못 된 것이다. 단순히 어리석은 게 아니다. 한번 뿐인 인생이 허물어진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절대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반드시 열어야 할 문들이 있다. 한두 번 당겨 안 열린다고 돌아서면 안되는 문들이 있다.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고는 결코 열리지 않는 인생의 문들이다. 허망하게 힘만 빼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소중한 문일수록 무겁다. 그러나 집주인은 쉽게 연다. 믿기 어렵겠지만 내게 할당된 문을 찾아 두들기면 집주인이 그냥 열어준다. 인생의 문이 가진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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