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칼럼

오! 솔레미요~~샌타바바라

조회 수 336 추천 수 0 2018.05.14 16:39:18

11817265_10153504737345747_2902422010437044319_n.jpg



 

로스앤젤레스에서 태평양을 따라 북향으로 달리다보면 산타바바라를 만난다. 남가주의 북단 끝이다. 하지만 산타바바라는 이국적이다. 분명 남가주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지만 공기와 땅 그리고 기온마저 확연히 다른 정취를 품고 있다. LA 일대가 햇빛에 이글거릴 때도 산타바바라는 살갗을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을 불어준다. 눈이 시리도록 뜨거운 백사장과 여름 태양이 부딪혀 반짝이는 태평양도 산타바바라에서는 온화하고 정숙하고 푸르다.

자동차로 두어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지만 자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쓸데없는 분주함과 초조함 그리고 게으름이다. 구태여 짬을 내 다른 색깔의 공기를 호흡해야 한다. 단세포로 퇴화하는 속도를 늦추고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점점이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다.
산타바바라를 갈 때마다 다운타운을 지나치지 못한다. 산타바바라의 다운타운은 프리웨이와 이어지지 않는다. 따로 입구가 마련돼 있지 않다. 초행자에게는 불친절한 환영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안락하고 조용하다.
그렇다고 헤맬 염려는 없다. 101번 프리웨이를 달리다 산타바바라에 들어서면 다운타운 사인이 나온다. 그때부터 서너 개 출구에서 아무 때나 내리면 된다. 그리고 프리웨이와 나란히 가면서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를 만나면 된다. 빠르면 이삼 분 안에, 늦으면 십여 분 안에 스테이트 스트리트와 조우할 것이다. 늦게 만나는 것도 좋다. 그 와중에 산타바바라 언저리 골목을 천천히 관람하시라.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몇 십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넓지 않은 길에 양옆으로 늘어선 상가들, 느릿느릿 거리를 즐기는 행인들, 레스토랑과 커피숍 그리고 극장, 모두 그대로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지만 미국의 도시들은 어쩐지 늙지를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변화의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무차별로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만행은 거부하고 있지만 상점의 간판은 세상의 흐름을 타고 새 얼굴로 바뀌었다. 우아한 드레스며 모자와 장식품을 내걸던 쇼윈도우는 사라져 가고 디지털 상품점이 번식한다. 얼음에 노랑, 빨강, 각가지 과일향 소스를 뿌려주던 작은 빙수 가게는 아련한 추억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가게와 얼음을 갈아 넣은 슬러시 커피를 파는 대형 체인점들이 터를 잡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슬렁거리며 상점을 기웃거리고, 카페 발코니에 앉아 선글라스 너머로 거리를 구경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산타바바라 다운타운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날로그 세계의 여유와 느림을 가득 선사한다.
더구나 스테이트 스트리트를 조금만 벗어나면 네이티브 주민들이 안식을 줄기는 커피숍과 소박한 카페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커피나 탄산주스를 주문하고 사진이 가득 담긴 아무 책이나 가져가 시간을 죽여 보라. 그저 조용히 숨만 쉬고 있어도 낯선 고장이 주는 설렘과 평안이 시름을 잊게 한다.
호기심을 충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자동차를 몰아 다운타운 뒤편의 언덕을 오르면 된다. 태평양을 굽어보는 아름다운 주택가 사이로 굽이굽이 길이 나 있다. 그 사이로 교회며 학교가 자리 잡고 있고 그림 같은 커피숍과 마주칠 수도 있다. 유럽 영화를 상영하는 커뮤니티홀을 만나는 행운이 깃들면 귀가 시간을 늦추더라도 차에서 내리고 볼 일이다. 오래도록 어쩌면 죽는 시간에 떠오를 포근한 기억을 얻게 될 것이다.
다운타운의 스테이트 스트리트를 곧장 내려가 바다로 향하면 그대로 피어를 찾을 수 있다. 커다란 주차장을 갖춘 피어는 레스토랑과 선물점을 찾는 관광객들로 분주하다. 피어를 정면으로 보면서 오른쪽으로 언덕길을 달리면 왼편으로 또 다른 입구가 나온다. 여기에는 산타바바라 피쉬마켓(Fish Market)이 있다. 가게 앞 식탁에 앉아 생선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물론 레스토랑보다 돈을 덜 쓰고 바다 내음까지 만끽할 수 있다.
가던 길을 조금 더 달리면 태평양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캘리포니아에서 알아주는 연 날리는 명소 중의 하나다. 짙푸른 바다와 청명한 하늘, 그리고 그 사이를 나는 연을 바라보다 잔디 위에 누우면 우주가 돌아가는 순서가 새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코로나가 '박수근 빨래터'로 내몰다

  • 2020-06-04
  • 조회 수 105

 화가 박수근은 국민화가라는 칭호가 이름 앞에 따라 다닙니다. 박수근이 그린 ‘빨래터’라는 그림은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을 기록했을 정도죠. 홍콩 경매시장에서도 2019년 ‘공기놀이 하는 아이들’이 23억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1964년 작고한 박수...

진흙탕 건너 '나에게 열리는 문'

  • 2020-02-27
  • 조회 수 234

가까이 다가 온 그 신사를 보니 한눈에도 ‘부티’가 물씬 풍겼다. 금발 머리를 단정하게 빚고 양복 정장을 세련되게 차려입은 멋쟁이였다. 외투도 입지 않고 나온 걸 보니 근처에 가는 참이었나보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자리잡은 로저스센터는 인적이 드물었다...

피지軍 장교 된 한인 ‘여리고성 돌기’ 여정

  • 2019-07-03
  • 조회 수 337

https://www.facebook.com/john.yoo.3760 김동 ‘수도관’은 워싱턴DC에서 쉐비체이스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메트로 역 주변으로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간다. 워싱턴 대성당도 멀지 않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고급 주택이 즐비하다. 영국 대사관이나 부...

군산 터널 끝에서 만나는 윤동주

  • 2019-06-14
  • 조회 수 6802

https://www.facebook.com/john.yoo.3760 해망굴은 깨끗하고 환해졌다. 바깥 축대도, 안쪽 천정과 바닥도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 그리고 여느 조그만 터널과 다름이 없어졌다. 좋은 일이지만 섭섭한 변화다. 1926년 개통된 연륜은 안내문이 아니라면 찾아보기 ...

‘무교동 연가’와 대전 국밥집 [2]

  • 2019-03-20
  • 조회 수 389

https://www.facebook.com/john.yoo.3760 청진동에는 ‘한때’ 선지해장국집이 있었다. 유치원부터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 앞을 오갔다. 어른을 따라 국물을 떠마시며 해장국 입맛에 길이 들었다. 머리가 큰 다음에는 혼자서도 안으로 들어갔다. ...

비밀의 씨앗 ‘게이쿄’ & 도쿄 '다방'

  • 2018-10-30
  • 조회 수 4302

https://www.facebook.com/john.yoo.3760 일본 도쿄대학 근처에서 오래 된 커피숍을 들른 적이 있다. 도쿄대학은 시내 여러 곳에 캠퍼스를 두고 있지만 혼고캠퍼스가 가장 오래 된 곳이다. 도쿄대학의 옛 정문으로 유명한 ‘아카몬’(붉은 문) 역시 이곳에 있다....

비 속의 파리, 시애틀 그리고 시나이 반도

  • 2018-05-30
  • 조회 수 677

https://www.facebook.com/john.yoo.3760비 속의 파리, 시애틀 그리고 시나이 반도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그린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은 아주 큰 그림이다. 어느 날 신문에 실린 사진에 훅 끌렸다. 그림 속에서 비 오는 19세기 파리의 거리를 신사숙녀가 우...

LA 장례식, 부여 야학당

  • 2018-05-14
  • 조회 수 675

https://www.facebook.com/john.yoo.3760 부여는 꿈꾸는 도시같다. 백제의 고도여서가 아니다. 부여군 읍내의 소박한 로타리에는 동상이 서 있고 딱 적당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시끄럽지도, 적막하지도 않다. 게다가 백마강이 말없이 들어왔다 흘러 나간다....

"젊을 때 싸우지 않아서 다행" 노인들 합창

  • 2018-05-14
  • 조회 수 563

모두 걱정과 두려움이 끝이 없다. 하다 못해 서너 살 짜리 아이도 한숨을 내쉰다. 슬슬 긴장의 끈을 놓아야 할 노인까지 신경이 바짝 예민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근심이 없으면 인생을 아무렇게나 사는 것같은 요상한 착각까지 들 정도다. 하지만 그럴 필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2018-05-14
  • 조회 수 555

https://www.facebook.com/john.yoo.3760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혹해 진다. 다른 사람을 겨냥하던 화살이 갑자기 자신을 향하면 화들짝 놀란다. ‘정말 어떻게 해야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짬이 없다. 그런데 바로 이 ...

등대를 찾아서...

  • 2018-05-14
  • 조회 수 793

https://www.facebook.com/john.yoo.3760 추억 속에 펼쳐지는 장면이 그리울 때가 있다. 고향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은 더욱 진한 색채를 띠고 다가온다. 마치 거리 탓인 양 시간의 차이는 애써 무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게 제자리...

포기해야 할 순간들

  • 2018-05-14
  • 조회 수 653

친구가 별로 없다. 잘못 산 탓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지만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덕분에 이제 와 뒤돌아보면 친구를 건지지 못한 이유가 영화 장면처럼 인생 곳곳에서 잡힌다. 그래도 친구라고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다면 가슴 저리게 감사...

오! 솔레미요~~샌타바바라

  • 2018-05-14
  • 조회 수 336

로스앤젤레스에서 태평양을 따라 북향으로 달리다보면 산타바바라를 만난다. 남가주의 북단 끝이다. 하지만 산타바바라는 이국적이다. 분명 남가주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지만 공기와 땅 그리고 기온마저 확연히 다른 정취를 품고 있다. LA 일대가 햇빛에 이글...

이별은 끝이 아니다

  • 2018-05-12
  • 조회 수 373

뉴욕에서는 현대미술관(MoMA)을 반드시 가봐야 한다. 뉴욕 일대에 살거나 방문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MoMA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트니 미술이니 ‘그딴 것’에 관심이 없더라도 인생에 꽃 한 송이 품는 마음으로 꼭 한번 둘러봐...

샌타바바라의 젊은 영혼들

  • 2018-05-12
  • 조회 수 300

UC샌타바바라 캠퍼스에 들어설 즈음 마침 관광버스 한 대를 만났다. 여름방학이 한창인데 대학교를 찾아올 관광버스라면 우리 일행 말고 누가 있으랴. 넓은 교정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걱정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버스를 열심히 쫒아갔다. 바램대로 버스는 ...

인생의 선물 같은 순간

  • 2018-05-12
  • 조회 수 362

선물 같은 순간이 있다. 감히 바라지도 못하고 정말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가슴이 가득 차는 때가 있다. 인생의 길에서 마주치는 아름다운 충돌이다. 피곤을 달래주고 지나 온 여정에 의미를 얹어주는 축복이다. 서울 북촌이 인기다. 이제는 서촌까지 발길이 ...

빠삐용은 시간을 낭비했다

  • 2018-05-12
  • 조회 수 551

‘빠삐용’은 포주를 죽이지 않았다. 교육자인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채 사창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건달이었지만 사람의 목숨을 뺏은 적은 없다.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았지만 사실 무죄였다. 야심과 오만으로 가득 찬 법정은 스물다섯 살 청년의 진실과 ...

매일이 성탄절인 세계 [1]

  • 2018-05-12
  • 조회 수 366

미국 남가주 일대를 커버하는 주파수가 103.5인 FM 라디오 방송이 있다. 음악만을 24시간 보내주는데 DJ들이 늘 ‘103.5’를 강조해 청취자 사이에선 방송국 이름이 돼 버렸다. 103.5 FM은 12월이 되면 하루 종일 성탄절 캐럴만 들려준다. 한해가 저물 때까지 줄...

부패관리 해부한 '캄비세스 왕의 재판'

  • 2018-05-12
  • 조회 수 524

'나의 서양 미술 순례’를 다시 읽고 있다. 일본 도쿄게이자이대학교 법학부 서경식 교수가 약관 30대에 쓴 책이다. 재일동포 2세인 서 교수는 문명의 흔적을 더듬는 단서를 독자들에게 던져 주는 베스트셀러 저서들과 칼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글을 ...

'여성의 시장'에 투자하라

  • 2018-05-03
  • 조회 수 360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접경한 긴장 지역에 있지만 중동 국가 중에는 가장 개방된 나라다. 수도 암만의 올드시티에는 로마시대 원형 극장과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전통 시장과 오래 된 점포들이 굽이굽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신도시 쪽으로 가면 현대식 쇼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