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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에 펼쳐지는 장면이 그리울 때가 있다. 고향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은 더욱 진한 색채를 띠고 다가온다. 마치 거리 탓인 양 시간의 차이는 애써 무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게 제자리에 있으리라는 몽상에 빠져든다.
샌피드로(San Pedro)는 한인에게는 남다른 도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다만 우정의 종각이 있기 때문이다. 해군 포대로 사용하던 절벽 위 드넓은 잔디밭에 세워진 기와지붕과 단청을 입힌 서까래 그리고 커다란 범종은 향수에 젖은 발걸음을 무작정 끌어당기곤 했다. 그럴 때 눈앞에 펼쳐진 태평양은 곧바로 고국과 맞닿아 있었다.
바다와 등대는 잘 어울린다. 태평양을 굽어보는 해안선에 우뚝 선 등대는 앞뒤로 전혀 다른 신호를 보낸다. 대양을 건너 온 배에게는 안식의 상징이지만, 육지의 사람에게는 장도에 오르라는 도전을 부추긴다.
우정의 종각에 서면 푸르디푸른 바다만 보이지만 바로 발밑에는 포인트 퍼민 등대(Point Fermin Lighthouse)가 서 있다. 등대는 1874년 건축됐다. 첫 등대지기는 메리 L 스미스 자매였다. 두 여인은 용감하게 등대를 지키려고 나섰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너무나 외로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등대 주변에 집들이 가득 찼지만 그때는 아무도 없었다. 고독과 싸움 끝에 떠난 자매를 대신해 나타난 등대지기가 조지 쇼 선장이었다. 그는 친구들을 불러들여 파티를 벌이며 이곳 생활을 즐겼다. 인간의 각오보다 훨씬 강한 게 주어진 탤런트다.
지금 포인트 퍼민 등대는 샌피드로의 상징이 됐다. 절벽 위에 세워진 등대는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빅토리안 스타일의 아름다운 이층집이다. 가옥과 등대가 한 몸으로 이어져 있다. 둘레에는 장미 정원이 꾸며져 있다. 등대 창문을 열고 안내원이 올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관광객이 적은 평일이라야 누릴 수 있는 친절이다.
포인트 퍼민 등대 일대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태평양을 바로 옆에서 내려 보며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테이블이 절벽을 따라 곳곳에 마련돼 있다. 커다란 나무의 그늘 아래 가만히 앉아 하늘과 바다가 동일한 색깔로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야외극장에서는 여름철을 맞아 ‘바닷가의 셰익스피어’ 연극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극장 위에 내건 구호가 재미있다. ‘끝없는 이야기, 티켓 없는 입장, 한없이 소중한 경험’(Timeless Tales, Ticketless Admission, Priceless Experiences).
팔로스버디스에 있는 포인트 빈센트 등대(Point Vincent Lighthouse)는 보호구역이 끝나자마자 나타난다. 등대 입구 옆에 비포장 나대지가 있지만 무시하고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곧 주차장과 레크리에이션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등대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은 땅 위에서 바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선물이다.
오후 시간이라면 더욱 좋다. 작열하던 태양이 기운을 뺄 즈음 빛은 온통 바다에서 절벽으로 쏟아 내린다. 바위에 앉아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이 장면을 등 뒤에서 촬영한 사진은 누가 찍어도 작품이 된다.
포인트 빈센트 등대는 연방정부의 관리를 받는다. 매달 두 번 째 토요일만 입장이 허락된다. 그러나 밖에서도 기가 막히게 우아한 등대의 뒤태가 고스란히 잡힌다. 등대 부지는 무려 8에이커에 달한다. 울타리 안에는 야자수와 잔디 그리고 섬세하게 가꾼 꽃무리들이 파란 하늘, 바다와 한데 어울려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등대라기에는 벅차게 아름다운 조화다.
지난 1926년 세워진 포인트 빈센트 등대는 민간인 등대지기가 지키다 1939년 해안경비대의 소관으로 넘어갔다. 이곳에는 기지 시설도 들어서 있다. 남가주 지역에서 해안경비대 통신과 헬리콥터 작전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개방 시간이 제한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등대에서 돌아오는 길, 로열팜비치로 좌회전하는 사거리에서 오른쪽 어깨 너머로 힐끗 눈에 들어온 편의점은 먼지가 켜켜이 쌓인 까마득한 흑백 동영상과 오버랩 됐다. 겁나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20대 청년이 보였다. 난생 처음 이국 땅에 도착한 지 두 달 정도 지난 즈음 처음 마련한 중고차를 타고 지도도 없이 우정의 종각을 찾아갔다. 남의 차를 타고 그저 한번 와 봤던 길이었다. 프리웨이를 타고 끝까지 가서 그냥 직진하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길도 모르고 운전도 서툴렀다. 근처에서 큰길을 따라 간 게 실수였다. 엉뚱한 곳을 헤매다 배가 고파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웠다. 핫도그에 양파와 케첩, 머스터즈 소스를 뿌려서 들고 나오다 얼어붙었다. 차 안에 자동차 열쇠를 놓고 내린 것이다. 창문도 손잡이를 돌려 올리고 닫는 자동차였다. 그야말로 아날로그 기계식이었다. 많은 차들이 그럴 때였다.
어딘 지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몰랐다. 영어는 미국 생활만큼이나 짧았다. 캄캄했다. 순간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편의점 주인에게 옷걸이를 빌렸다. 그나마 ‘오프너(opener)’를 달라는 만행을 ‘행어(hanger)’로 눈치 챈 주인 덕분이었다. 창문 틈에 밀어 넣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땀이 나고 창피했다. 오가는 미국 사람들이 모두 힐끔거리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죠? 도와줄까요?” 금발의 전형적인 백인 젊은이가 말을 걸어 왔다. 바슷한 나이로 보였다. 상황을 파악한 그는 옷걸이를 넘겨받아 이리 저리 쑤셔댔다. 한참을 애쓰던 젊은이는 이제 편의점에서 나오는 손님들을 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픽업트럭에 장비를 싣고 다니는 남자가 잠시 도와주다 포기하고 떠났다. 몇몇 사람이 기웃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지나가고 초조한 마음에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름 결단을 내렸다. “뒤 창문을 깨죠.”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유리창을 바꾸려면 돈이 엄청 든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몇 번 더 주장했지만 마치 자기 자동차인 것처럼 반대했다. 사실 돈도 없었지만 다급한 초조함에 앞뒤 따질 새가 없었다.
어느덧 샌피드로 언덕에 석양이 비추기 시작했다. 세 시간은 족히 더 흐른 것 같았다. 백인 청년이 문뜩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갔다. “이제 저 사람마저 가서 안 오는가 보다.” 포기와 불안감이 밀려 올 때 그가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손에는 금속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근처 정비소에서 차문을 여는 도구를 빌려 온 것이다. 오후 내내 자동차에 매달려 버둥거리던 우리는 순식간에 끝을 냈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는 피자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창밖으로 배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뱅크. 아내는 관광가이드이며 외국 여행 중이었다. 마이클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었다. 흑백분리 정책이 아직 기승을 떨던 시대였다. “인종 차별 하지 않나요?” 어리석은 질문도 던졌다. 그는 엄숙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람을 차별하는 건 죄에요. 난 인종차별 절대 반대해요.”
이런저런 수다를 나눴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 잊었다. 확실한 건 마이클이 그날 먹은 음식값까지 내버렸다는 것이다. 웨이트리스도 기다리지 않고 계산대에 가서 지불하고 왔다. 한인 타운에 있는 중국집에 데리고 가서 거하게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전화를 몇 차례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그러다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잃어버렸다.
마이클은 누가 뭐래도 천사였다. 마이클은 히브리어 미카엘에서 온 이름이다.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이다. 성경 다니엘서 12장1절에도 나온다. 성경에서 이름이 언급된 유일한 천사장이다.
‘그 때에 너의 백성을 지키는 위대한 천사장 미카엘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생긴 뒤로 그 때까지 없던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그 책에 기록된 너의 백성은 모두 피하게 될 것이다.’
그날은 주일이었지만 그때까지 교회라고는 중학교 때 친구 따라 딱 한 번 가 봤을 뿐이었다. 그 이후 먼 세월이 돌고 돌았다. 하지만 마이클은 마음속에 여전히 천사로 남아 있다. 하나님이 낯선 땅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새파란 젊은이에게 보내 주신 친구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분에 빠져 바짝 긴장하고 독이 올라 사는 청년의 등을 토닥거리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다. “걱정하지마. 그리고 너도 도와주고 살아라.” 낯선 땅에서 막 타향살이를 시작하는 청춘에게 당부하던 목소리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날의 당부는 지금까지도 여러 번, 죄인의 삶 속에서 많이 많이 외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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