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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에서 맞닥뜨리는 역경은 끝이 없기 마련이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고난과 수고는 숙명이 됐다. 낯선 환경에서 삶을 개척하는 이민자의 생활에도 애환은 예외가 아니다.


이민사회 한인들이 가장 많이 고통을 호소하는 문제는 고독과 외로움이다. 하지만 이를 앞지르는 대목이 있다. 바로 침묵이다.

생명의 전화(원장 박다윗 목사)가 지난 18년 동안 한인들과 나눈 상담 내용을 항목에 따라 분류한 결과에 의하면 ‘고독’이 4,902건으로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다음은 ‘정보안내’ 요청이 4,557건을 차지했으며 ‘감사와 격려’ 전화가 4,020건으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들 주제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1만1,830건을 기록한 항목이 바로 ‘침묵 전화’였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 상담이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생명의 전화의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입증하는 통계다.

또 한인들이 자신의 고민과 고통을 털어놓고 의논할 곳이 절대 부족하다는 사실을 수많은 ‘침묵 전화’가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속사정을 의논하는 자체를 한인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가를 나타내는 집계 결과이기도 하다. 타인 앞에서 보이는 자신과 고난에 힘들어하는 실제의 본인 등 이중적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태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가족이나 직장동료, 교인 등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사례도 다수를 차지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담요청은 2,949건으로 다섯 번째를 기록했으며 가정 폭력을 포함한 ‘부부 갈등’이 2,557건으로 6위, 이혼을 포함한 ‘결혼문제’는 2,327건으로 7위에 올랐다. 이를 모두 합칠 경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화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최고 상담 건수를 차지하는 셈이다.

상담전화 건수 상위 10위 안에는 이밖에도 의처증을 포함한 ‘정신 및 정서장애’가 2,180건으로 8위를 차지했고 이단 대처를 포함한 ‘신앙상담’이 2,161건으로 9위, 외도를 포함한 ‘배우자 및 본인의 부정’을 놓고 상담을 요청한 건수가 2,034건으로 10위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자살충동 등 인생을 비관하는 호소가 무려 789건이나 걸려 왔으며 근친상간을 포함한 ‘성도착증’ 상담도 998건이나 됐다. 또 마약, 알콜, 도박 등의 ‘중독’ 문제도 896건을 차지했다. 한인사회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곪아 터지는 상처와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다.

한인 가정에서 자녀교육을 둘러싼 고민과 갈등이 적지 않다는 결과도 나왔다. 단순한 ‘자녀와 갈등’ 상담은 260건에 그쳤지만 범죄와 비행에 연루된 ‘자녀교육’ 문제는 765건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고부간 갈등을 포함한 ‘가족문제’도 862건을 기록했으며 자녀의 학교 적응을 포함한 ‘이민정착’ 상담이 820건을 차지했다.

한인사회에서 처음으로 생명의 전화를 개설하고 18년 동안 이끌고 있는 박다윗 목사는 “동포들이 이민자의 삶을 살며 힘들고 슬플 때 가슴을 나누는 소통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바란다”면서 “정신과 전문의와 협력을 통해 상담의 대상을 넓히고, 가상 장례식 체험 등을 마련해 한인들이 건강한 내면을 다지도록 사역을 확장할 계획”이라며 한인사회와 교계의 지원을 희망했다.

생명의 전화는 연중무휴로 매일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자원봉사 상담원들이 미 전역과 캐나다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다. 문의 (866)365-0691, (213)480-0691
2016-11-9 미주한국일보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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