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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베스트셀러 ‘긍정의 힘’으로 널리 알려진 조엘 오스틴 목사가 지난 2012년 워싱턴DC에서 부흥회를 열었을 당시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일요일 오후 부흥회가 열리는 프로야구 내셔널팀 구장 ‘볼팍’으로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교통정리에 나선 경찰관도 이날은 은혜가 넘쳤다. 길이 막혀서 “유턴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난 모르니까 적당할 때 하라”고 애써 외면해 줬다.

‘소망’을 주제로 열린 이날 부흥회에서 오스틴 목사는 세 시간 내내 단상에 선 채 집회를 인도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도움이 있으니 어깨를 펴고 최선을 다하라.” 오스틴 목사의 부인과 어머니, 형, 아들과 딸까지 총출동해 “포기하지 마라”고 당부를 거듭했다.

오스틴 목사에게는 평가가 엇갈린다.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을 제대로 전한다는 지지자도 많고, 반면에 성경과 복음의 핵심을 외면한채 달콤한 메시지만 전한다는 혹평도 거세다. 그날의 집회에서도 소망을 얻은 사람도 있을 터이고, 오스틴 가족의 행사에 실망을 느낀 청중도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다리를 건너다 문득 척 콜슨이 생각났다. 바로 집회가 열리기 한달 전 타계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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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교도소 선교의 아버지’로 불렸다. 콜슨은 저명한 종교상인 ‘템플턴 상’을 수상했고 극적인 개종의 모델로 ‘바울 같은 사람’이라 불릴 정도였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그는 천국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통해 삶이 변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콜슨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콜슨은 권모술수의 대가였다. 특히 자기가 모시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야비한 냉혈 인간’이었다.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서는 “친할머니도 밟고 갈 수 있다”고 그는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녔다. 덕분에 콜슨은 대통령 특별고문으로 백악관에서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렸다.

깡패들을 고용해 반전 시위를 제압하고 민주당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에 불을 지른 뒤 닉슨 대통령에게 불리한 문서들을 훔쳐오자는 아이디어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워터케이트 사건은 콜슨의 작품 중에서도 암술의 절정이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침입해 선거정보를 빼오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이로 인해 임기 도중 물러나고 콜슨 자신은 교도소에 수감됐다.

당시 워터케이트 사건을 감추려다 파김치가 된 콜슨은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C.S.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첫 장에 “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글이 있었다. 항상 ‘대통령이 나를 찾고 있다’는 말을 하며 으쓱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콜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거듭난 기독교인이 됐고 이제 내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린다”고 말했지만 돌아 온 건 의심, 멸시와 조롱 뿐이었다. 그가 살아 온 인생이 영 반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콜슨은 석방된 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도소 선교를 시작했다.

재소자들을 직접 찾아가 성경 공부, 직업교육 등의 재활훈련을 실시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소자의 재수감 비율은 2003년 8%로 급락했다. 전국 재수감 비율이 50%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콜슨이 세운 교도소 선교회는 미국 내 1300여 교도소와 전 세계 110개국에서 재활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수만 명의 재소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위로와 힘을 주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연설문 담당이던 마이클 거슨은 “백악관에서 교도소로 가면서, 콜슨은 성공의 삶을 끝내고 의미의 삶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권이 출발하던 시절 인사철마다 교회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역대 정권 중 아마 기독교를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시킨 정권일 것이다. 하지만 정권 막판에는 핵심 인물들이 부정부패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았다. 그들도 교도소에서 진실로 ‘본 어게인(Born Again)', 즉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기적을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진짜 ‘소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는 소위 '잘 나가던 분들'의 교도소 행렬을 보면서 그나마 이 만큼이라도 정의가 집행되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을까?

성공은 의미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의미는 타인의 행복을 빼고는 생기지 않는다. 내 자신과 가족의 이익도 좋지만, 남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순간, 이미 인생의 성공은 저 만치 멀어져 간다. 그리고 부메랑은 언제고 날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