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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레이크 엘시노(Lake Elsinore) 일대도 많이 변했다. 이전에는 15번 프리웨이를 타고 샌디에이고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농장과 붉은 돌산 풍경이 한가로웠다. 이제는 코로나 일대가 개발되면서 신흥주택가와 상가가 이어진다. 대형 아울렛 쇼핑몰도 레이크 엘시노 다운타운과 프리웨이 출구를 하나 차이로 두고 들어서 있다.

드넓은 호수를 캠프 그라운드가 둘러 싼 이곳에 엘시노 온천 선교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주일 오전 9시30분 온천 한가운데 채플에서 일본어 찬양이 흘러나온다. 여기선 미야가와 수수무 목사가 설교하면 오끼 사모가 한국어로 통역한다.

오끼 사모는 강옥희라는 한국인이다. 혈혈단신 처녀 선교사로 일본에서 고군분투하던 시절 뜻하지 않게 일본인 배우자를 만났다. 당시 집사이던 남편은 훤칠한 키에 기가 넘치는 경상도 여자 선교사를 그야말로 '죽자고' 따라다녔다. 그리고 아내는 물론 한평생 몰두할 사역자의 길을 얻었다.

"미야가와 집안은 귀족 출신이에요. 남편도 귀공자로 자랐고 커서는 보석 도매사업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죠. 그런데 한국에 출장 갔다 하나님을 알게 된 거에요. 그리곤 무일푼으로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예수라는 귀신에 홀려 미쳤다고요."

미야가와 목사는 한국어도 잘 한다. 동안의 얼굴처럼 성품도 어린이 같이 투명하고 부드럽다. 권위나 꾸밈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런 만큼 정직하고 원칙에 충실하다. 도저히 믿음을 꺾지 않는 그를 집안은 철저히 외면했다. 두 사람이 만날 당시에는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말라있었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며 한국까지 따라 오더라고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남편은 한국말이 서툴렀으니까 일본에 돌아가서 오사카 기독대학에 입학했죠. 뒷바라지 하면서 '성경 100번 읽지 않곤 목사 될 생각도 말라'고 지독하게 훈련했습니다."

선교사인 아내는 스승 신학생 남편은 제자였다. 부부는 목사 없는 교회로 일본을 돌며 사역하다가 미국의 일본인 교회 담임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러다 레이크 엘시노에 온천장을 5년 전 인수했다. 미야가와 목사는 온천이 꽉 막힌 전도의 돌파구였다고 말했다.

"일본인 교회 담임이 훨씬 편하죠. 생활도 보장되고요. 하지만 예배나 드리고 마는 사역을 계속 할 순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복음을 알려야 했습니다. 그때 나타난 게 이곳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온천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재산도 없는 일본 목사가 미국에서 온천을 구입할 돈이 있을 리 없다. 이번에도 한국인이 나섰다. 한인은행의 크리스천 지점장이 대출을 해 줬다. 매달 상환금으로 허덕이지만 거두는 보람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미주일본인회 회장을 지낸 재계 거물이 온천욕을 하러 왔다가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리곤 다음주 곧 바로 파나소닉 내쇼날 등 쟁쟁한 일본 기업의 미주지역 전직 회장들을 몰고 나왔다. 모두 비신자였다.

"인생의 첫 30년은 공부를 했고 다음 30년 동안 돈을 벌었지만 앞으로 30년간은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상상도 못한 주님의 열매입니다. 일본 고위층에 선교할 수 있는 귀한 통로가 열린 겁니다."

물론 복음의 메시지가 먼저 마음 문을 열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자 옷을 갈아입고 온천장을 쓸고 닦으며 노동하는 목사를 보고 기업인들은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지금 한국인 오끼 사모는 일본인 남편을 목사로 내세워 선교사역의 대어를 낚는 중이다.

레이크 엘시노 선교센터는…

'실로암 연못'처럼 영혼·육신 새롭게
'온천욕 왔다가 자연스레 예배 참석'


레이크 엘시노 다운타운에 위치한 온천선교센터는 ‘하우스 오브 실로암(House of Siloam)’이란 영어 간판도 함께 걸어 놓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한 한인들 사이에는 실로암 온천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실제로 한인과 일본인들은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고객 중에는 한인의 경우 크리스천이 다수를 차지한다. 한인 교계에 소문이 나면서 꾸준히 교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온천욕도 하고 일본선교도 지원한다는 일석이조의 목적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거의 ‘미국에 있는 일본인 온천’이란 사실만 알고 찾아온다. 이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크리스천 신문인 복음신문에 여러 차례 특집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일본 기독방송을 통해서도 미야가와 목사 부부의 온천 사역이 널리 알려져 미주 지역 일본사회는 물론 일본에서도 알음알음 소문이 나고 있다.

온천사역은 표지판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병자를 치료한 실로암 연못처럼 영혼과 육신의 소생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온천욕을 하러 이곳을 찾은 일본인은 거의가 비신자다. 일본에선 기독교에 대해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이국땅에서 만난 미야가와 목사와 한국인 사모의 삶은 신기하면서 신선한 충격이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0.5%라고 하지만 교회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출석하면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 가운데 이단을 빼면 그나마 0.3~0.4% 밖에 안 되죠. 웬만한 이슬람나라보다 적은 숫자입니다. 더구나 한국 바로 옆에 있는 나라 아닙니까?”

미야가와 목사는 일본선교는 ‘한국인 아니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사람이다. 이런 논리는 사실 일본선교에 헌신하는 사역자라면 대부분 동의하는 것이다. 그는 또 ‘일본선교는 열매 없는 사역’이란 교회의 자포자기에 강력히 반발한다.

그는 재작년 한인 선교단체가 진행하는 창조과학 탐사여행에 일본인 45명을 참가시켰다. 모두 일본에서 모집해 온천선교센터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꿔 탐사여행비를 지불해 줬다. 덕분에 빚은 늘었지만 의사 등 비신자들이 ‘하나님이 창조주’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돌아가 세 곳의 교회가 개척됐다.

목사 부부는 지난 1999년 미국으로 와 글렌데일 일본인감리교회를 섬기다 온천선교센터를 세울 때까지 패서디나, 토런스, 노스릿지 등에도 일본교회를 개척하고 그 동안 6명의 전도사를 양성했다. 일본의 신학교 입학생이 많아야 10명 미만인 현실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확이다.

“이 곳에 교회가 있는지 모르고 온천욕 하러 왔던 한인이 예배에 참석한 뒤에는 애착을 갖고 기도해 주고 자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몇 한인교회는 일부러 모임을 여기서 열기도 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작년 여름에는 온갖 탄압과 죽음의 위협에서도 현대판 사도행전의 기적으로 불리는 사역을 펼치며 전세계에 알려진 중국인 사역자 ‘윈 형제(본명 리우전잉)’가 엘시노 온천선교센터에서 이틀간 집회를 갖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