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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매일이 성탄절인 세계

host 2018.05.12 14:24 Views : 620

미국 남가주 일대를 커버하는 주파수가 103.5인 FM 라디오 방송이 있다. 음악만을 24시간 보내주는데 DJ들이 늘 ‘103.5’를 강조해 청취자 사이에선 방송국 이름이 돼 버렸다.

103.5 FM은 12월이 되면 하루 종일 성탄절 캐럴만 들려준다. 한해가 저물 때까지 줄곧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이 방송이 인기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만한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서 1등으로 꼽히는 FM 방송이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어느새 자동차 라디오 채널은 103.5로 고정된다. 차 안을 가득 채우는 캐럴은 단단하게 굳은 가슴을 어루만지며 따뜻하게 녹여 준다. 지금은 듣기도 쉽지 않지만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퍼지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신앙이 없어도 캐럴을 들으면 웬지 가슴이 설레고 즐거움에 젖어들었다.

성탄절 캐럴에 잠겨 운전을 하면서 새삼 어린애 같은 설레임을 즐겨본다. 호주머니는 가벼워도 마음 속에서 나누고 싶은 선물 보따리는 쌓여만 간다. 성탄절도 지나고 올해의 끝자락이 발 앞에 와 있어도 103.5 FM은 계속 캐럴을 전파에 실어 내보내며 추운 세상에 온기를 전하고 있을 것이다. 

103.5.jpg 12월 25일을 우리는 성탄절로 지내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러시아 동방 정교회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정하고 있다. 헝가리는 12월 초에 성탄절 행사를 갖기도 한다.

호주의 천문학자는 동방박사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끈 별에 대해 연구한 결과 2000여 년 전 예수 탄생 시기는 6월 17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정확히 어느 날 태어났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시계도 없던 시절의 일이다.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파고들지만 허무한 짓이다. 정작 성탄절의 의미는 하루만 반짝 할 게 아니다.

불황이니 침체니 하지만 매번 성탄절은 그래도 ‘호황’을 누렸다. 나눔의 손길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수천명의 네티즌이 온라인 자선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저소득층 가정이나 노숙자들을 돕고 있다. 기부하고 싶은 사람을 어려움을 겪는 개인이나 가정과 이어준다. 이제껏 교육 비품이 부족한 학교나 해외 파병 군인 등을 도와 왔지만 경기가 어려워지자 수혜 대상을 넓혔다.

언론은 “경제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지만 자선 행위를 하는 미국인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인디애나주립대 자선활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자선행위는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 연구소의 멜리사 브라운 부소장은 지난 40년간 기부금 규모는 경기와 상관없이 계속 증가해 왔다고 말했다. 1987년만 줄었는데 주식시장이 폭락해서가 아니라 세법이 변경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 거부들의 기부도 움츠러들지 않고 있다. 파산위기에 처한 AIG의 자회사인 선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엘리 브로드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자기 소유의 주식가치가 3억7500만달러 이상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기부액을 전년보다 1800만달러나 늘렸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파이낸셜타임스(FT)지와 인터뷰에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늘려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몇 년간 경기가 침체한다고 교육과 건강 등에 대한 자선을 줄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성탄절이 언제이든 별 의미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성탄절의 교훈은 일 년 내내 지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 속에서 마음까지 영하권에 머물면 그 인생이 처량하다. 올해를 가장 따뜻하게 마무리 지으며 새해의 부푼 소망을 품는 최선의 길은 ‘내 속’을 녹이고 ‘남’을 돌아보는 것이다. 녹지 않아봐야 결국 꺾어지거나 부서질 뿐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성경은 강조한다. 한해가 다 마감하기 이전에 뾰족한 마음의 끝을 사랑을 나누며 녹여 볼 일이다. 나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 새해를 계획하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또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