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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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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방송의 코믹 드라마 ‘마이크 앤드 몰리’의 주인공은 경찰관과 교사 커플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 시청률이 가장 높은 프라임타임에 방영된 인기 미드다....
주인공 두 사람은 모두 뚱뚱하다. 그래서 생기는 이런저런 좌충우돌 스토리로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는다. 지난 번 시청한 에피소드 역시 살을 빼기 위한 두 사람의 눈물겨운 분투기를 다뤘다. 뱃살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버거운 경찰관 마이크는 기다란 손전등 안에 사탕을 숨겨두고, 다이어트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몰리는 피트니스센터 주차장에서 싸움을 벌여 경찰에 연행된다.
진짜로 저렇게 살 찐 경찰관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이다. 미국 경찰이라고 다 뚱뚱이는 물론 아니다.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에 착 붙는 제복과 권총이 잘 어우러진 경찰이 훨씬 더 많다. 아니 대다수를 차지한다. 멋있게도 보이고, 공권력의 권위가 물씬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배불뚝이 경찰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키가 조그만 여성 경찰관도 권총을 차고 덩치 큰 동료와 똑 같이 치안 일선을 누빈다. 저래선 도망가는 범인을 어떻게 쫓을까 괜한 걱정까지 하게 된다.뚱뚱이 경찰도, 외모가 연약해 보이는 여성도 별 탈 없이 치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순찰차다. 미국에서 운전을 할 때 조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순찰차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통 규칙 사인을 미처 못보고 차를 돌렸다가 어느새 순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뒤에 바싹 들러붙는 오싹한 경험을 누구나 하게 된다. 경찰이 언제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게 미국의 기본적인 치안 전략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일일이 특정 장소에 배치하지 않아도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만일 용의자가 도주하면 순식간에 여러 대의 순찰차가 몰려들고 헬리콥터가 뜬다. 범인의 은신처를 급습할 때는 경찰특공대(SWAT) 등이 동원돼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형사 한 두 명이 범인을 덮치는 장면은 그야말로 TV나 영화에서 벌어지는 활극이다. 바람직하진 않을 지라도 배가 산만한 경찰관이 순찰차를 타고 얼마든지 자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철저한 시스템의 힘이다. 경찰차 안에 뚱보 경찰이 타고 있든, 조그만 체구의 여성 경찰이 타고 있든 큰 상관이 없다. 시민들은 순찰차를 보고 부지부식 간에 경찰 시스템의 힘을 느끼는 것이다.
예전에 버지니아주의 한 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문안한 적이 있다. 약을 주려 병실에 들어 온 간호사는 환자에게 이름을 물었다. 환자의 입을 통해 성명을 들은 다음에는 환자의 팔에 찬 팔찌에서 바코드를 하나하나 확인한 뒤 비로소 약을 건넸다.
두어 시간 후 바로 그 간호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절차를 반복하고 다시 약을 줬다. 혈압을 재고 점검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가 재생되듯 하루에도 몇 번씩 똑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울 만큼 철저하게 매뉴얼에 정해진 대로 안전 수칙을 지켰다. 간호사가 환자 얼굴과 이름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안전 메뉴얼을 그 대로 따르는 것이다. 시스템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환자의 입장에서도 여간 든든한 게 아니다. 귀찮기는커녕 싫은 내색 없이 같은 짓을 반복하는 미국인 간호사가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해 수원에서 살인 사건 피해자가 112에 구조 요청을 했지만 끝내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경찰의 늑장 대응과 112 시스템의 문제점이 도마에 올랐다. 경찰의 신속한 반응과 수사에 따라서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세월호는 다시 떠올리기도 몸이 떨릴 정도다. TV화면으로 뻔히 온 국민이 생중계로 보는 가운데 생떼 같은 생명들이 죄도 없이 사라져 갔다. 도대체 배 옆에 붙은 구조선은 무엇이며, 공중에 두 대나 떠 있던 헬리콥터는 또 무엇인지. 이건 단순히 현장의 문제가 아니다. 무작정 경찰만 두둘겨 댈 게 아니다.
길거리에서 공연을 보겠다고 환풍구 위에 사람들이 몰리고 대형 참사가 벌어진다. 방지 시설도 없고, 제재하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도 안전의식이 없다.
우리 사회는 매뉴얼을 경시하는 경향이 짙다.정해진 룰이나 매뉴얼대로 하자고 했다간 ‘답답한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외려 규칙을 적당히 무시하면 융통성 있는 ‘그릇이 큰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시스템의 파워가 약하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임기웅변에 의지하고 한건에 환호하게 된다. 그러다 여기저기 수시로 구멍이 난다.
융통성은 원칙 위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시스템의 뒷받침 없는 개인의 활약은 모래 위의 지은 집일뿐이다.
응급차나 소방차가 아무리 사이렌을 울려도 꼼짝 안 하는 차량이 바로 우리 사회의 자충수다. 앰불런스 안에 자기 자식이 누워 있을 지 어찌 알고 그러는가. 그래도 이런 운전사가 처벌 제대로 받았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없다. 시스템이 불완전하고 바르게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 생명, 내 가족의 안전, 내 이익을 위해서라도 시스템을 단단히 세워가야 한다. 결국 언젠가 내가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