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박수근은 국민화가라는 칭호가 이름 앞에 따라 다닙니다. 박수근이 그린 ‘빨래터’라는 그림은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을 기록했을 정도죠. 홍콩 경매시장에서도 2019년 ‘공기놀이 하는 아이들’이 23억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1964년 작고한 박수근은 그저 그림과 가족, 그리고 기도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 김복순은 바로 이런 인품에 반해 결혼을 했죠. 박수근은 고향인 강원도 양구를 떠나 인근 지역인 금성에 살았는데 그때 빨래터에서 김복순을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박수근과 부인 김복순은 강원도 금성감리교회 주일학교를 함께 다닌 사이였습니다. 남녀 구별이 엄연하던 시절이니까 그때는 서로 잘 몰랐다고 합니다.
바로 얼마전 박수근의 딸 박인숙 씨가 ‘내 아버지 박수근’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딸이 회상하는 아버지 박수근은 한마디로 ‘사랑꾼’ 그 자체였다고 하네요.
“가부장제가 당연시되던 시기에 아버지 같은 남자는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아버지는 정말 시대를 역행하는 로맨티스트였다. 동네의 산과 개울, 소박한 나무와 이웃이 죄다 모여 있었던 화폭이 널려진 마루는 우리를 둘러싼 삶의 축소판이었다.” 박인숙 씨가 한 신문(중앙일보)과 가진
인터뷰에서 전한 추억입니다.
실제로 이 당시 창신동 집 마루에서 찍은 박수근 가족의 사진을 보면 마루 전체가 박수근의 그림으로 싸여 있습니다.
박수근은 생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했던 그 어떤 사람도, 나조차도 박수근이 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될 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수근이 딸에게 남긴 것은 그 ‘따스한 온도’의 기억이라고 취재기자는 썼습니다.
이 기사의 끝자락에 기자가 쓴 글이 마음에 조용히 와 닿습니다. “일상의 평범함에서 ‘진실함과 선함을 찾고, 그것을 그리는 일에서 행복감을 느낀’ 아버지, 그 그림의 온도. 살아서 부와 명예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화가 박수근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누구보다 충분히 사랑했기에 ‘영원한 화가’로 남은 것이 아닐까. 한 권의 회고록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역사적 시대를 배경으로 잔잔한 감동이 긴 여운으로 남는 영화 한 편을 본 듯하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한평생 믿고, 조용하게 그림 그리며, 가난한 삶 속에서도 가족과 지극한 사랑을 나누다 떠난 천재 화가의 인생이, 그리고 신앙이 가슴을 촉촉히 적십니다.
정말 강한 신앙은 무엇일까? 진정 굳센 믿음, 진짜로 하나님을 따르고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수근은 열 두살 때 밀레의 ‘만종’ 그림을 보고 “마치 홀린 사람처럼 밤낮으로 밀레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달라 기도했다”고 합니다.
김복순은 처녀 시절 늘 천국의 모델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루 세끼 조 죽을 끓여 먹어도 좋으니 예수님 믿고 깨끗하게 사는 집으로 시집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박수근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요” 박수근이 김복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에 담긴 내용입니다.
부잣집 김복순 아버지는 춘천의 병원 원장 집과 딸의 혼사를 서둘렀는데요, 박수근은 그 소식을 듣고 드러누웠다고 합니다. 김복순은 당시 춘천여고까지 나온 신여성있지만 박수근은 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인 돈없는 ‘환쟁이’였거든요.
하지만 두 청춘은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던 거지요. 그리고 착한 심성과 순수한 믿음을 가진 두 사람을 하나님은 부부로 맺어 주셨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금성감리교회에서 한사연 목사 주례로 결혼예배를 드렸습니다.
“남편이라기보다 어머니 같고 오빠와도 같은 분으로 존경하는 염을 갖게 하는 분이었다” 김복순의 회고입니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먼저 피신 시킨 뒤 그녀는 공산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었죠.
“나는 이미 죽을 각오를 했소. 남편 찾다가 죽으면 죽고 다행히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 떠납시다” 김복순은 시동생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피난을 떠났답니다.
일행은 중간에 미군을 만났습니다. 미군은 김복순에게 중공군이 어디 있느냐고 심문했죠.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를 지적하자 미군은 간첩이 아닌가 의심을 했습니다. 이때 김복순은 “여학교 다닐 때 지도 보는 법을 배웠다. 나는 예수 믿는 크리스천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미군은 친절하게 일행을 피난소로 안내했다고 합니다.
김복순이 쓴 일기를 보면 처음과 끝이 기도였다고 합니다. 전쟁 후 가난 속에서도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아내의 모습, 그 애잔한 삶의 풍경을 박수근은 자신의 화폭에 담았습니다.
박수근 부부는 서울 창신동 동신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아내 김복순은 남편이 죽고 서울 중곡동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죠. 위대한 예술가의 알려지지 않은 실제 인생에는 겸허한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된 행복한 가족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박수근 부부의 신앙과 예술 인생을 취재한 또 다른 신문(국민일보) 기자는 이렇게 감동어린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밀레의 ‘만종’ 속 부부의 모습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열두살 시골 소년은 나중에 ‘진짜 화가’가 됐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만종 처럼 고요하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그림같은 삶을 살다 갔습니다.
큰 게 좋은 것인지, 많은 게 좋은 것인지, 늘어나는 게 좋은 것인지, 빠른 게 좋은 것인지, 그리고 작은 건 나쁜 것인지, 적은 건 나쁜 것인지, 줄어드는 건 나쁜 것인지, 천천히는 나쁜 것인지.
런닝셔츠 바람으로 대청마루 안쪽에 쭈그리고 앉아, 마루에 걸터 앉은 아내와 엄마에게 기대 서 있는 어린 여식 뒤에서,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고 있는 박수근을 보면서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집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존의 경제적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버렸다는 어느 경제학자의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온 세상을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고, 경제적 가치로만 저울질하고, 경제적 기준만 들이대던 인간 세계에 변혁의 물살이 들어차게 된 계기가 됐다는 거지요.
경제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경제는 성장, 상승 곡선, 팽창, 확대 뿐일까요. 경제는 언제나 커지고 늘어나야 올바른가요? 좀 줄어들고, 잠잠해지고, 내려가면 비경제적인가요. 이건 경제가 아닌가요.
굶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극단으로 치닫을 건 없습니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해서 당장 망해 버리는 건 아닙니다. 마이너스 성장을 지지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꽁꽁 묶어 버렸습니다. 이 가운데 생각을 해 보니, 이제껏 너무 크게, 많이, 넓게, 빨리 만 최고인 것처럼 살아 왔다는 자각이 눈을 뜨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집이 좀 작아져도 괜찮겠다는 시각, 자동차 덩치도 좀 줄어도 상관없다는 여유, 더 큰 TV로 구태여 바꾸지 않아도 불편이 없겠다는 생각, 냉장고도 신형이 꼭 좋은 게 아니다는 각성이 들더라는 겁니다.
돈을 더 벌어서 이사를 갈 수도 있고 새 가전제품을 구입한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안 그래도 나쁘지 않고, 실패한 건 더더구나 전혀 아닙니다. 어떻게든 더 벌고, 늘려가고, 더 소유하고, 새 것만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게 언제 어디서 내 몸을 습격할 지 모르는 바이러스가 몰고 온 낯선 인생의 무대입니다.
새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이 AC(After Corona) 물결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 속에 뿌리 내린 탐욕과 망상, 무절제가 없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BC(Before Corona)
시대와는 다른 무대가 막을 올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구촌, 나라, 사회, 기업, 가정, 개인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고 완급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변화의 흐름에 예외는 없습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힘 만 의지하는 사람은 이전보다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리저리 BC형 머리를 굴려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다가는, 도저히 예상 못한 AC 변수의 힘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커지려고 사는 것도 아니고, 많이 갖추려고 사는 것도 아니며, 빨리 빨리 하려고 사는 게 아닙니다. 행복하지 못하다면 다 소용없습니다. 소설가 박완서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서울 명동 앞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미8군 PX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PX에서 군인들 초상화를 그려주던 화가들에게 영어 통역을 하는 게 그녀의 일이었죠. 그 화가들 가운데 박수근이 있었습니다.
박완서의 등단작 ‘나목’은 미군 PX에서 일하던 이때의 경험을 배경으로 쓴 소설입니다. 남자 주인공 옥희도의 실제 모델이 박수근으로 알려져 있죠. 여주인공 이경은 옥희도를 흠모하면서도 그의 부인에게 호감을 갖는 스스로에게 화가 납니다. 옥희도의 부인이 ‘성서 속의 지혜롭고 품위 있는 여인 브리스길라와 같은’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을 빼어 닮은 인물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 것입니다. 박완서는 생전에 “박수근은 불필요할 때 결코 천재성을 드러내지 않았다”면서 그의 겸손한 품격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딸이 평생토록 ‘사랑꾼’으로 기억하는 아빠, 아내가 어린 시절부터 일생을 사랑하고 존경한 남편, 자신의 작품이 국가적 자랑이 된 화가. 당시 곤궁한 삶은 그 만의 가난이 아니었고, 아들과 손자가 당당히 대를 잇는 화가로 우뚝 섰습니다. 박수근은 천국으로 떠날 때까지 그렇게도 하고 싶은 일, 그림을 끝까지 그릴 수 있었고요.
아쉽기로 하면 한이 없는 게 인생이죠. 하지만 조금만 뒤집어 보면 새삼 아쉬울 것도 없는 게 인생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와 인간 문명을 흔들어 버린 나날들, 문뜩 박수근을 만났습니다. 그가 사랑한 딸 덕분이죠. 박수근은 순하고 착하게, 기도하며, 자기 일을 충실하게 하며, 이땅에서 생명의 시간을 채워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거칠게 살았고 각박하게 지냈고,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작고, 적고, 좁고, 느리더라도 앞으로 인생에서는 더 깊고, 높고, 익고, 착해지길 소망합니다.
박수근의 삶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꼭 잡고 동행할 수 있길 간구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절에는 하락하고 후퇴하는 것도 축복이란 걸 세상도 함께 배워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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