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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화 시대에서 ‘은퇴’는 언제나 화두를 차지한다. 언제 은퇴할 것인가,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은퇴하고 필요한 돈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성공적인 은퇴 생활을 향한 열정과 염려는 또 다른 명암을 사회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 젊은 세대라고 크게 다를 바도 없다. 수명이 연장되면서 결국 모두가 겪게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은퇴 준비를 얼마나 잘 했느냐가 인생의 성적표가 될 정도다.

클레오 파커 부인은 아주 ‘심플한’ 은퇴 계획을 갖고 있었다. 자동차 업계에서 마케팅 분석 전문가로 일하던 그녀는 60대가 돼도 계속 일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안을 찾느라 바쁘게 됐다. 파커 부인은 50살이 되던 지난 2006년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에서 광고회사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아예 없어져 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친 이후 10년 동안 자동차 업계는 휘청거렸고 일자리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그 동안 그녀는 이곳저곳 직장을 전전했다. 풀타임으로 일한 적도 있고 단기간 계약직으로 일하기도 했다. 마지막 풀타임 직장은 애완동물용품 체인점의 마케팅 분석 일자리였다. 그나마 지난해 부서 자체가 사라졌다.
그 이후 이제껏 30번 이상이나 면접을 치렀다. 62세라는 나이에 일자리를 찾아 다니는 것이다. 대부분 일자리는 이전에 받던 연봉에 훨씬 못미치지만 이마저 그녀의 학력이나 경력에 맞지도 않는다. 파커 부인의 이력서는 그런 직장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높고 화려하다. 이래저래 일을 구하기가 힘든 것이다.
“우선은 무엇보다 ‘괜찮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전 직장보다 레벨이 낮다거나, 연봉이 적다거나, 모두 ‘나는 상관없다’고 본인이 가고 싶은 직장에게 확신을 줘야 해요.”
연령 차별도 넘어야 할 장벽이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보다 더 젊은 패기 넘치는 사람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일에 열정적이라도 소용없어요. 몇년 동안 면접을 하면서 나보다 나이든 사람을 보질 못했어요.”
그녀의 케이스는 은퇴를 미루고 계속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긴장되는 이야기다. 포부는 좋지만, 대안을 갖추는 게 상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일하는 게 은퇴 이후 생활 안정을 도모하는데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은퇴 시기를 65세에서 69세로 보고 있는 사람이 33% 정도 되며 34%는 70세 이상으로 잡고 있다. 나머지는 절대 은퇴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보스턴칼리지의 은퇴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37%가 본인이 계획한 은퇴 시기보다 일찍 은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 내용을 보다 자세히 드려다 보면 상황은 더 암울하다. 66세 이후에 은퇴하겠다고 계획한 사람 중에서 절반이 넘는 55%가 목표 시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전에 은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저프 샌전베이처 부소장은 “예상치 못하게 일찍 은퇴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 문제와 실직”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거나, 취미 생활을 하고 싶다는 등의 이유도 있다. 또 일의 질적 수준도 은퇴 사유가 되기도 한다.
“일을 하겠다는 확실한 동기가 있나요? 뭔가를 성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이런 요소들이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일찍 은퇴가 닥쳐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동기와 성취 의욕이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건 틀림없다.
도시문제연구소 리처드 잔슨 은퇴정책 담당에 따르면 지난 25년 동안 62세 이상의 인구의 근로 참여율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하지만 이 가운데 대다수는 고학력 일자리에 해당된다. 나이가 들고도 일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고급’ 일자리에 국한된 상황인 셈이다.
“62세 이상 인구의 근로 참여율은 대학 졸업자가 고교 중퇴자보다 세 배나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대졸자의 건강 상태가 더 낫기 때문입니다. 대졸자의 일자리는 보통 육체 노동을 요구하는 게 아니거든요. 고용주들이 업무 성취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다른 겁니다.”   
오래 일하는 게 분명히 사회보장연금을 받는 시기를 미루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만큼 나중에 수령할 금액도 늘어난다. 또 오래 일할수록 은퇴 기금을 더 적립할 수 있게 된다. 은퇴 후 연금에 기대 살아야 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은퇴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더 오래 일하는 건 아무리 취업 시장 상황이 좋다고 해도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4월 현재 55세 이상 근로자의 실업률은 2.6%로 전체 실업률보다도 더 낮은 상태다. 하지만 장기간 실업률을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전체 실업자 가운데 27주 이상 동안 직장을 잡지 못한 실업률은 22.2%로 집계됐다. 이에 비해 55세 이상 중에서는 수치가 26.6%로 높아졌다. 55세 이상 근로자가 더 오랫 동안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맞는 말입니다. 실업률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일단 직장을 잃고나면 이전 상태로 회복할 기회를 잡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텍사스 주 오스틴 시에서 취업 가이드로 일하면서 특히 나이 든 근로자의 전직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는 마크 밀러의 말이다. 설혹 새 일자리를 찾는다고 해도 이전에 받던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파커 부인의 남편인 마이크 역시 지난해 말 일자리를 잃었다. 두 사람은 은퇴 후에 사회보장연금과 개인적으로 준비한 은퇴연금을 갖고 살 작정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빨리 은퇴연금을 써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파커 부인은 80세가 될 때까지는 연금으로 버틸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풀타임 일자리를 찾으면서 사회보장연금 수령 시기를 66세까지 미루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 매달 수령액이 늘어나게 돼 부부의 사회보장연금 수령액을 월 4,000달러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가능한 최고 오래도록 일하면서 평생 아껴 온 애완견들에게도 더 시간을 할애한다는 게 그녀의 소망이다. 최근 그녀는 자신의 마케팅 커리어를 애완견 관련 사업에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벌이고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새로 도전하는 업종에서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다. 예전에 벌던 수십만 달러 대의 수입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화이트 부인은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 2008년만 해도 연봉 20만 달러를 받는 국제개발 전문 컨설턴트였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그녀의 연봉은 날아갔다. 지금은 동분서주 고군분투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공영방송인 PBS에 방송된 뒤 그녀의 스토리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확산됐다. 그 덕분에 책도 출판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그녀의 동영상 강연은 150만 회의 접속 기록을 올리기도 했다. 올해 65세인 그녀는 단기 계약 업무로 들어오는 수입과 개인연금에 의지해 살고 있다. 집값 높기로 악명 높은 워싱턴DC에 집을 갖고 있지만 다행히 거의 모기지를 갚았다. 66세까지 사회보장연금 수령을 미루고 버티며 연금액수를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 가입이 가능해지는 62세와 65세를 가장 적당한 은퇴 시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62세는 대부분 사람에게는 사회보장연금을 받기에 이른 시기다. 그렇지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오래 일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냉철하게 플랜B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60대나 70대에도 일을 하고 싶으면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일자리 환경이 어떻게 변화할지, 본인의 건강이 어찌 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자동차 마케팅 분석 전문가로 일하던 클레오 파커는 60대에도 무난히 일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은 취업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겪고 있다. <Nick Hagen for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