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캠프에서 봉사자와 장애학생들이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족식에 이어 성찬 예배가 진행되는 도중 갑자가 학생 한 명이 계단을 뛰어오른다. 그러자 여학생 봉사자가 뒤를 쫓아 달리고 어느새 다른 남학생은 앞을 가로막는다. 탄력이 넘치는 노루처럼 재빠르지만 섬세하고 친절하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여학생 주변은 건장한 언니와 오빠 봉사자 네 명이 둘러싸고 있다. 행사가 끝나고 댄스파티가 시작되자 무거운 휠체어를 이리저리 돌리며 기분을 맞추기 바쁘다. 와중에도 언니들은 연신 뺨에 뽀뽀를 하고 오빠들은 손을 놓지 않는다.
화장실 문을 연 채 용변을 보는 학생 앞에서 봉사자 학생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하는 말마다 대꾸해 주고 어린 동생 다루듯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UC샌타바바라에서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미주밀알선교단(총단장 이영선 목사)이 주최하는 사랑의 캠프가 열렸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미주 지역 최대의 발달장애인 행사다. 이번에도 남가주와 북가주, 캐나다 밴쿠버에서 장애인 학생과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500여명이 참가했다.
사랑의 캠프의 주인공은 물론 장애인 학생들이다. 그러나 캠프를 움직이는 숨은 주역은 바로 봉사자 학생들이다. 어리게는 9학년부터 대학생 교사에 이르기까지 봉사자들의 헌신이 없다면 캠프는 존재할 수도 없다.
장애인 친구 한 명당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네 명의 봉사자가 붙는다. 장애가 심하거나 정서 안정도가 떨어질수록 많은 봉사자가 배치된다. 대부분 봉사자와 장애 학생들은 이미 익숙한 사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남가주 곳곳에서 열리는 밀알 사랑의 교실에서 파트너를 이루고 있다.
2박3일 동안 집과 부모의 곁을 떠나는 발달장애 학생들에게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봉사자가 함께 한다는 자체가 큰 위안을 준다. 어린 봉사자들이 아까운 여름방학을 쪼개 캠프에 참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봉사자 중에는 캠프 내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 밤중에 장애 친구가 방을 빠져나갈까 걱정이 돼 문을 책상으로 막고는 그 앞에 매트리스를 깔고 쪽잠을 자기도 한다. 식당에서도 옆에 끼고 앉아 식사를 도와야 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한 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봉사자들이다.
“봉사자 학생들도 당연히 집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죠. 다른 청소년처럼 게으름도 피우고 부모에게 떼쓰는 평범한 학생들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교실이나 사랑의 캠프에 오면 딴 사람이 되는 거죠. 자기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가 꼭 돌봐야 할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변화를 일으키는 셈이에요.”
이영선 총단장은 “세상에는 ‘행복 바이러스’라는 게 분명히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사랑도 전염이 되더라는 이야기다. 교사와 스태프, 자원봉사자와 장애학생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작은 기적을 수도 없이 꽃피우는 것이다.
UC샌타바바라 캠퍼스에는 방학기간에도 불구하고 여러 종류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크리스천 모임도 있고 청소년 캠프도 열렸다. 대부분 북가주나 타주에서 온 팀들이었다. 이들은 코리안 아메리칸 학생들이 동족인 발달장애인 친구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목격하고 감동의 눈빛을 보내며 자리를 기꺼이 양보했다.
봉사자 가운데는 고등학생 때 봉사를 시작해 대학에 진학해서는 인턴으로 봉사하고 교사까지 오르면서 자원봉사의 끈을 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십 수 년 동안 청춘의 주말을 온전히 바친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봉사자들은 모두 장애학생들과 똑같이 참가비를 냈다. 봉사한다고 생색을 내기는커녕 돈까지 내고 생고생을 자처하는 것이다. 어른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이다. 하나님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인생 내내 축복할 수밖에 없다.
2015-7-2
미주한국일보<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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