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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언제나 여전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학을 만든다. 수많은 생각과 시선의 차이 속에서 나름대로 하나님을 알고 따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으나 그 가운데서 복음을 구현하는 실마리를 찾는다.

잔 캅(John B. Cobb) 교수의 강연회가 지난 29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인근 윌셔연합감리교회(담임목사 정영희)에서 열렸다. 캅 교수는 현존하는 신학자 중에서 과정신학의 세계적인 거목으로 꼽힌다. 그의 저서 중에서 ‘교회 다시 살리기’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은총과 책임’ 등은 한국어로 번역돼 널리 읽히고 있다.


캅 교수는 연합감리교 신학의 본산으로 인정받는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수십년 동안 한인을 포함해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이 날의 강연회도 한인 제자들이 그의 90세 생일을 기념하며 마련했다. 아흔의 나이도 사역자의 열정을 가로막지 못했다. 캅 교수는 정정한 패기로 이 땅에서 실현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외쳤고 질문마다 상세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캅 교수의 강연은 철저하게 현실과 세계를 바탕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만 이뤄질 추상적 이상향이 아니라 바로 사는 동안 실천할 실제적 가치라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사랑만큼이나 정의가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돈의 물결에 빠진 교회가 정의를 상실하면서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일갈했다. 그는 동시에 정죄의 늪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세대가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걸핏하면 자신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거침없이 몰아세우는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 넘실대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누군가 올바른 역할을 하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바로 당신이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이 돼야 합니다. 서로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나도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주고받는 사랑의 소중함을 알고 실천을 권면한 것입니다.”

캅 교수는 교회와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가치관에 대해서도 강연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다.

“현대사회는 돈에 대한 사랑으로 구성돼 있어요. 인간의 가치보다 돈이 훨씬 더 중요한 세상이죠. 크리스천은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을 깨뜨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쫓는 세상 가치관에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육 체제나 소비 습관 등을 바로 잡아야 하고, 바로 이런 점에서 교회의 책임이 따른다고 캅 교수는 말했다. 그는 기독교 사상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기독교 뿌리를 사람들이 포기하고 있습니다. 돈의 파워가 선거 결과와 정책의 방향을 좌지우지 하고 있어요. 크리스천들이 나서 본래의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회개를 해야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죠. 회개는 바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참석자 한 명이 요즘 기독교 교세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캅 교수의 의견을 물었다. 캅 교수는 자신이 감리교인이라는 점을 전제로 답변했다. 한마디로 “교회가 부유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감리교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며 태동했지만 교인들이 중산층이 되면서 재정적 안정에 관심을 쏟고 세상적 가치와 타협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교회가 핵심 가치를 잃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연이 끝난 후 제자를 대표해 김상일 박사는 스승을 회고했다. 어둠침침하도록 연구실의 전등을 켜지 않고, 자동차 운전을 거부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자원의 절약을 실천하는 삶의 태도를 실례로 소개했다. 또 “현실을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만 하며 예언자적 정신을 구현하는 게 기독교가 사는 길”이라고 캅 교수는 주장해 왔다고 전했다.

강연회를 마친 뒤 캅 교수와 제자들은 조촐한 생일축하 파티를 가졌다. 교회 식당에서 케익의 촛불을 끈 뒤 캅 교수는 두 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활짝 웃었다.


2015-2-3
미주한국일보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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