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마펫 박사의 사무실에는 한국의 정취가 물씬 풍겨난다. 뒤로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사진이 보인다.
우거진 나무 잎들이 가을 색에 물들기 시작하는 캠퍼스 끝자락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도서관이 묵묵히 서 있다. 지금은 비록 완전히 분리돼 운영되지만 아이비 리그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의 뿌리가 신학교다.
19세기에 지어진 도서관 석조 건물 2층 새뮤얼 교수의 방문은 활짝 열린 채 방문객을 환영하고 있었다. 새뮤얼 휴 마펫 박사는 지난 86년 은퇴했지만 석좌 교수로 존경받으며 여전히 캠퍼스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저술한 '아시아 기독교회사'는 1권에 이어 얼마전 2권이 출간됐다. 아시아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된 유래와 경로부터 현대의 상황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저서로 공인돼 있다.
미국 교계와 학계에선 헌신적인 선교사로 그리고 저명한 선교신학자로 자리 매김하고 있지만 마펫 박사가 한국과 한인교회와 쌓은 인연은 피보다 진하다.
그는 한국에 개신교의 문을 연 새뮤얼 어스틴 마펫 목사의 세째 아들로 1916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마펫 목사는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신학교를 창립하고 숭실학교를 세우며 일생을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에 의해 추방된 뒤 베일에 쌓여있던 마지막 행적과 무덤이 지난해 11월 중앙일보에 처음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아들 새뮤얼 휴 마펫 박사도 그런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선교사로 한국을 섬겼다. 여든 아홉 살 인생에서 44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그의 동생 하워드 역시 의사이며 선교사로 한국에서 병원과 학교를 세우면서 한평생을 지샜다.
소형 디지털 카메라와 레코더를 보더니 새뮤얼 박사는 대뜸 한민족의 우수성부터 말을 꺼냈다.
"한국사람은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훨씬 전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민족입니다."
그러면서 3.1운동 때를 기억하며 자신도 독립운동의 영웅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많은 학생들이 우리 집에 숨었어요. 지하실에도 숨고 침대 밑에도 숨었지요. 일본 경찰이 들이닥쳤는데 나랑 동생 하워드가 침대 위에서 뛰며 '만세 만세'하고 외쳤어요. 아버지 얼굴이 하얗게 변했지요."
열 여덟 살까지 평양에서 자란 새뮤얼 박사는 미국에서 휘튼칼리지와 프린스턴신학대학원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선교를 떠났다.
1955년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성경학교를 운영하고 주일이면 전쟁 중 담임목사가 사망한 시골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배를 인도했다.
새뮤얼 박사가 교수와 학장을 지낸 장로교신학대는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키워냈다. 한국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와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도 직접 가르친 제자다.
"한국은 세계 2위의 선교 강국이 됐어요. 한국 교인들은 타고난 전도 일꾼입니다. 그게 한국교회의 최고 장점이죠. 복음을 전해 크리스천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요. 한국교회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기적의 사례입니다."
그러나 새뮤얼 박사는 아버지 대부터 한국교회가 서고 자란 과정을 눈으로 목격한 산증인이다. 그가 뿌리 깊은 한국교회의 고질병을 모를 리 없다.
"한국교회가 분열하지 않길 늘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인이 '동양의 아이리쉬'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하죠. 그 만큼 부지런하고 우수하지만 동시에 분열을 일 삼는 점을 꼬집은 거죠. 둘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장로교 통합 측과 합동 측 신학교 모두 아버지가 세운 평양신학교를 모태로 주장하면서도 교단이 나눠져 있는 상황도 지적했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충고를 잊지 않았다.
"복음주의와 인도적 사회참여를 분리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어요. 둘 다 해야죠. 복음주의가 없으면 기독교의 도덕성도 없는 것이고 동시에 긍휼이 없으면 기독교 윤리도 상실하는 것입니다."
새뮤얼 박사에게 선교사와 목회자들을 위한 '선배의 금언'을 부탁했다. 역시 성경의 중요성과 파워를 강조했다.
"선교사는 무엇보다 성경을 제일로 삼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머감각을 잃지 마세요. 난관을 극복하고 친구를 사귀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목회자들은 설교와 강의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일본 목사들은 주로 강의를 하지만 한국 목사들은 그래도 설교를 하지요. 강의는 성경속 사건을 설명할 뿐이지만 설교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말입니다."
새뮤얼 박사의 영성 관리는 독특하다. 매일 아침 아일린 사모와 성경을 읽은 후 기도를 한다. 프린스턴 신학교 전화번호부에 적힌 사람들을 놓고 하루 한 페이지 씩 중보기도를 한다. 그리고 세계 각국을 소개한 선교 정보지 '오퍼레이션 월드'를 펴고 매일 한 나라 씩을 위해 기도한다.
"이기주의야 말로 크리스천에겐 가장 나쁜 거죠. 이기적으로 되지 않게 매일 훈련하는 겁니다."
2005/10/06
프린스톤= 미주 중앙일보 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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