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전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연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말년 남가주에서 여생을 보내다 샌타바버러 인근 공원 묘지에 묻힌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마펫 선교사의 마지막 삶과 묘지에 대한 자료가 전혀 알려지지 않아 한국 기독교사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중앙일보 취재팀은 지난 19일 샌타바버러 인근 카핀테리아에 안장된 마펫 선교사의 묘지를 확인하고 둘째 아들 헤이워드 마펫 선교사(87)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에서 50여 년간 의료선교사로 일생을 보낸 헤이워드 선교사는 평양에서의 어린 시절과 마펫 선교사의 노후 미국생활을 자세히 전했다.
마펫 선교사의 묘비에는 '사무엘 오스틴 마펫 1864~1939'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일생에 거친 헌신을 표시하는 '한국 개척 선교사 1889~1936'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그 밑으로 무덤에 합장한 아내 '루시아 피쉬 마펫 1877~1962'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마펫 선교사의 마지막 생애와 묘지는 셋째 아들인 사무엘 마펫 주니어(전 장신대.프린스턴신학교 교수)가 서정운 장신대 명예총장에게 연락처를 전해 와 처음 공개된 것이다.
취재팀과 함께 묘지를 둘러 본 서 총장은 "마펫 선교사에 대한 연구는 신학자들 사이에 종종 진행됐지만 미국으로 돌아 간 뒤 행적과 어디에 묻혔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이번 발굴의 의미를 강조했다.
서 총장은 "한국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한 선교 거목의 생애를 정리하고 기념할 수 있는 희귀한 자료가 발견된 것"이라면서 "개신교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마펫 선교사의 최후와 무덤을 확인해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밝혔다.
또 서 총장은 "마펫 선교사가 언더우드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 선교에 지대한 공로를 남긴 초대 선교사 3인중 한 명으로 교회사에 기록되고 있는 인물인 만큼 이번에 발견된 사진 및 유품이 앞으로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무엘 마펫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신학교를 설립하고 장로교 목사 7명을 처음 배출했으며 평양 장대현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또 숭실학교 개교에 참여하고 10년간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요양차 1937년 초 캘리포니아로 돌아 와 패사디나 인근 먼로비아에서 지내다 3년 후 뇌졸중으로 75세의 삶을 마쳤다. 평생을 한국 선교에 헌신한 마펫 선교사는 작고할 때까지 지인의 집 차고를 개조한 방에서 청빈한 삶을 살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헤이워드 선교사는 "아버지의 소망은 한국으로 돌아 가 뼈를 묻는 것"이었다고 전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을 걱정하며 기도하다 돌아 가셨다"고 말했다.
2004/11/25
카핀테리아= 유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