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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호황을 구가할 시기에는 투자할 곳이 수두룩하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곳곳에서 금맥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식어가면 돈의 흐름도 속도를 낮춘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미술품 투자가 경기 침체기에 투자 적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어느 분야에서나 진정한 ‘하이 엔드’는 경기를 타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예술과 자본이 만나는 예술품 거래는 불황에 돈이 몰리는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가 피카소와 최고급 자동차 페라리는 너무 이질적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경기가 좋은 시절이면 값어치가 치솟는 전형적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소매업계의 거인 P&G 회사의 주식이 급등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일단 경기가 수그러들기 시작하면 다른 분야보다 먼저 기세가 꺽이기 마련이다. 돈 많은 부자 수집가들은 사치 생활에서 한발을 뺀다. 투자자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자산을 움켜쥐고 몸을 사린다.
지난 2012년 경기가 회복되면서 이런 ‘패션 자산’ 거래 시장은 환호성을 질렀다. 마음이 가는 대로 돈도 따라 가던 시절이었다. 내가 사고 싶은 작품에 그대로 돈을 부어 넣으면 됐다. 경주용 말, 포도 농장, 스포츠 팀 등에 거액의 투자금이 다투어 몰려 들었다.
폴 설리번 컬럼니스트는 불경기에도 시장에서 기대를 모으며 부유한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다섯 가지 자산을 제시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목록은 바로 예술품이다. 가치는 아주 높지만 유동성이 적은 안정적 자산이다. 나머지는 고급 자동차, 최상품 포도주, 보석, 부동산 등이다.
예술품을 모은다는 것은 미(美)와 갈구의 차원 만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한다. 바로 투자 가치와 단단히 맺어져 있다는 점이다. 예술품 시장이 얼마나 호황을 누렸는지는 지난 몇년을 뒤돌아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경제가 침체되고 예술품을 찾는 입맛이 식을 때가 올 것이라고 미리 대비하는 수집가는 거의 없었다.
헷지펀드 분석가로 일하다 기업인으로 변신한 로이 세버그 역시 예술품 수집가 중의 한 명이다. 파블로 피카소 드로잉 작품부터 17세기 네덜란드 거장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하이 엔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작품의 가치를 나름 기준을 갖고 객관적 시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예술 본연의 본질적인 가치와 사회적 화폐 가치, 두 가지를 모두 살펴 본다는 것이다.
“사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역대 가격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고 세버그는 덧붙였다. 그가 창립한 ‘골드 머니’ 기업은 금과 원자재 등 값 나가는 금속류를 거래한다. 동업자와 함께 세운 또 다른 회사 ‘미네’는 보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고위층 사교계에서 피카소의 작품이 소유하고 싶은 자산으로 모두의 눈길을 끄는 건 우연이 아니다”고 그는 강조했다. 피카소가 생전에 그린 5,000여 점에 달하는 작품들은 따로 거래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충분할 만큼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피카소와 같이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의 작품을 사는 것은 불경기에 대처하는 훌륭한 ‘햇지’가 된다는 것이다. 비록 수백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다만 떠오르는 현대 작가의 작품은 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트렌드는 빨리 바뀐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유를 설명했다.
예술품 시장 조사 회사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된 예술 작품 가운데 톱 100위 작품들은 값어치가 4.3% 상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예술품 거래 시장 전체 상승율인 1.9%를 두 배 이상 초과한 수준이다. ‘아트프라이스’는 이들 초고가 작품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 2008년 당시만 해도 예술품 시장은 출렁거리는 가격을 견딜 만한 면역력을 갖추지 못했다. 2008년과 2009년 불과 2년 사이에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 작품 가치는 3분의2 이상 폭락했다. 거래량도 뚝 떨어져 2012년이 돼서야 이전 수준으로 겨우 회복됐다.
기껏 사들인 예술 작품의 값이 추락하는 꼴을 보기 싫으면 당연히 작품 감상이 아니라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미술품 딜러들은 충고한다. ‘토폴차일드아트어드바이저리’의 B J 토폴 공동대표는 “지난 불경기 속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면 자기가 선호하는 작가 뿐 아니라 지불해야 할 댓가를 동시에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이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잘 알려진 ‘상품’을 구입하려고 하지 트렌디한 현대 작가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경기 침체의 기미를 예술품 시장에서 읽는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국제 아트페어에서도 바이어들은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들이며 작품을 찾아 가격을 흥정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다.
말할 것도 없이 그녀 역시 트랜드 작품을 사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작품’을 샀다가는 재정적으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열정과 합리적인 결정을 잘 조화시킨다면, 매일 사랑하는 작품을 감상할 수 도 있고 언젠가 가격도 뛸 것”이라고 그녀는 권고했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벤처 사업가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장 피고찌의 경우 저렴한 작품들을 모아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는 “난 다른 헷지펀드 수집가와는 다르다”며 “투자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작품을 모은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피고찌는 10만 달러 이사 나가는 작품은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장 마이클 바스콰의 작품을 그는 1982년 불과 1,000달러에 구입했다가 지난해 무려 320만 달러에 팔았다.
그는 자신이 모은 작품들을 따로 하나 씩 매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피카소나 르네 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공통점을 가진 작품들을 그룹으로 모아서 거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예 전시장을 만들 작정을 하고 있다.
이처럼 ‘하이 엔드’ 고가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종종 또 다른 ‘대박’을 종종 터뜨린다. 지난 1982년 숨진 쿠바 작가 위프레도 램의 작품은 지난 10년 동안 가격이 두 배에서 세 배까지 껑충 뛰었다. 미술사에서 그의 위치가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주한국일보 유정원 기자
<사진설명>
윌버 로스 재무장관의 부인 힐러리 기어리 로스의 방에는 1억달러에 달하는 예술품 36개가 가득 차 있다. by Nickolas Sargent /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