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중부 지역에 위치한 프레스노에서는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야심찬 인프라 건설 사업중의 하나다. 하지만 분열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미구엘 아리아스는 수 많은 농장이 자리잡고 있는 프레스노 시의 시의원이다. 그 역시 이곳에서 흔히 눈에 띠는 농장 노동자의 후손이다. 그는 고속철도가 프레스노를 캘리포니아 드림으로 이끌어 주길 소망하고 있다. 빈곤한 이 지역을 오래 전부터 꿈꿔온 번성의 길로 인도하길 바라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전국을 먹여 살려 왔어요. 이제는 우리 자신을 먹일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첫 발걸음이 될 거에요.”
하지만 새로 선출된 개빈 뉴솜 주지사가 이번 달 주의회에서 행한 첫 연설은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을 혼란 속에 빠트렸다. 중가주와 실리콘 밸리를 잇는 고속철도 사업은 막대한 비용을 감안해 대대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지사는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고속철도 사업은 중가주 안으로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주지사는 인구와 기회가 밀집한 캘리포니아 해안 지역으로 연결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현재 고속철도를 프레스노부터 실리콘밸리까지 연결하는 사업에만 부족한 자금이 최소한 90억달러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뉴솜 주지사의 발언은 커다란 의문을 던진다. 과연 미국은 대형 공공사업을 진행하면서 통 크게 생각하고 함께 일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특히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났듯 주민의 표심이 갈라진 지역에서 말이다.
뉴솜 주지사의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반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재원 충당을 둘러싼 논쟁으로 비화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35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 지원금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뉴솜 주지사는 이제 취임한 지 겨우 두 달 밖에 안된다. 고속철도 스토리는 트럼프 집권 내내 그가 겪을 전국적인 정치판 싸움의 서막에 불과하다. 캘리포니아 언론들은 주지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속철도에 소들만 가득 탄 삽화를 싣고 고속철도를 ‘아무데도 가지 않는 기차’라고 꼬집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고통부 장관을 지낸 레이 라후드도 “주지사가 고속철도 스피드로 프로젝트를 죽여 버렸다”면서 “너무 단견이고 비전도 없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뉴솜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이고 라후드 전 장관도 민주당 정권에서 일한 처지다.
다른 주에서는 고속철도 사업에 대한 포부를 잇따라 밝히고 있다. 워싱턴 주 제이 인슬리 주지사는 시애틀부터 뱅쿠버(캐나다가 아니라 워싱턴주 도시)를 지나 오리건 주 포틀랜드를 잇는 고속철도 사업을 제시했다. 텍사스 주에서도 댈러스와 휴스턴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민간 투자자들이 촉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만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이런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다. 거대한 재원을 갖춰 자금 흐름이 원활한데다, 주정부와 의회는 사실상 단일 정당이 통제력을 갖고 있다. 선거를 통해 나타난 유권자들의 표심도 다양한 프로젝트와 공공 서비스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주 고속철도 사업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난 댄 리처드는 단언했다. “캘리포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상수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고속도로 시스템도 최고 수준이고요. 또 주립대학교 시스템도 역시 일류급입니다. 도대체 고속철도 사업을 할 자신이 없다고 발을 뺄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뉴솜 주지사 이전부터 고속철도 프로젝트는 과다 지출과 반복되는 공사 지연으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 10년전 고속철도 사업이 주민 투표를 통과할 당시 전체 공사 비용은 약 450억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지금은 무려 980억달러로 공사 비용이 치솟았다.
공사를 추진하는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위원회는 장장 23년 전에 출범했다. 중국은 그 사이에 이미 1만6,000마일에 달하는 고속철도를 완공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프로젝트의 첫 단계인 중가주 119마일 구간 공사는 2022년이 돼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설혹 공사가 지속된다고 해도 각종 법률 문제와 반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를 보면 다수의 여론은 여전히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고속철도와 관련이 없는 여러 지역 주민들, 그리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중산층에서 반대가 심하다.
무엇보다 비관적인 지적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H 서머스는 본인을 “아주 아주 많은 이유로 인프라 투자를 엄청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고속철도의 경우, 들어간 비용에 비해 그 만큼 혜택을 누릴 수 있을 지 매우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아시아나 유럽에서는 인구 밀집 지역에 고속철도를 건설해 성공을 거두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인구 밀집도가 떨어지는 교외 지역이 많으며 대부분 근로자들이 자동차를 몰고 출퇴근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쭉쭉 뻗어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인프라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이견이 별로 없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 투입된 돈을 따져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거의 나아진 게 없는 실정이다. 지난 금융위기 시절에는 정부가 인프라에 쓴 예산이 국내총생산(GDP)의 겨우 3.3%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 194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러는 사이에 전국의 도로, 교량,철도는 꾸준히 낙후돼 갔다. 반면에 새로운 건설 프로젝트는 정치와 환경, 법적인 문제로 지연을 거듭했다.
아리아스 시의원이 대표하는 지역은 홈리스가 넘치는 거리, 낡고 폐쇄된 공장과 오염된 토질 등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는 고속철도가 수천 가구의 신분상승 사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젊은이들은 고속철도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으로 진출해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를 잡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운행을 줄이게 되고 대기 오염이 줄면서 환경 문제도 나아질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프레스노는 디트로이트 다음으로 전국에서 빈곤 문제가 가장 심각한 도시다. 아리아스 시의원은 말했다. “고속철도를 덤불 덩어리라고 놀리며 건설 사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매일 실의에 빠져 살지만 철도를 통해 겨우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이웃들을 말입니다. 그걸 앗아간다는 건 비양심적인 짓일 겁니다.”
미주한국일보 유정원 기자
<사진설명>
프레스노 지역 고속철도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Jim Wilson/The New York Times
<사진설명>
프레스노 지역 고속철도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Jim Wilson/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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