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장로가 아프리카 오지 마을의 어린이들을 끌어안고 있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해 변변치 않은 도로를 10시간 동안 달려 가야 합니다. 조그만 시내에서 트럭으로 갈아타고 다시 6시간을 갑니다. 이 길은 딱히 도로라 할 것도 없어요. 자동차가 숲을 헤치며 길을 만들며 나간다는 표현이 적당하죠. 그리고 마침내 이원철 선교사의 사역지가 나타납니다.”
도로 위에서 보내는 10시간을 단축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형 경비행기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아프리카 밀림 위를 날아가는 경비행기는 조그만 바람에도 나뭇잎처럼 곤두박칠 치며 나아간다. 이후에도 6시간의 트럭 여정은 피할 길이 없다.
김범수 장로는 올해도 어김없이 2주간에 걸쳐 아프리카 의료선교 여행을 다녀왔다. 김 장로는 매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는 물론 파푸아뉴기니아, 남미 아마존 밀림 등 세계의 오지를 찾아 선교사를 돕고 현지인들에게 치과 진료를 제공한다. 대부분 경우 그는 주민들에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치과의사’이다. 지난해에는 세 곳의 우물을 파는 사역을 지원했다.
“케냐로 들어갔지만 에디오피아 국경에 걸쳐 있는 마을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곳을 가서 여러 분의 선교사를 만났죠. 이원철 선교사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21년 전 사모와 함께 일곱 살, 다섯 살 짜리 딸과 아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들어간 뒤 아무도 모르는 헌신과 순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면 저럴까? 감동할 뿐입니다.”
이원철 선교사는 오지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사역을 위해 국적까지 케냐로 바꿨다. 학교에는 150여 명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김 장로는 전했다.
“무슬림 마을 가운데 선교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주민이 땅을 내줘 교회를 세운 곳이 있었습니다. 얼기설기 나무로 지은 예배당에 십자가는 당당하게 달렸습니다. 그 현지인은 얼마 후 실종됐다 시체로 발견됐답니다. 피값으로 세운 교회였습니다.”
지금은 현지인 목사가 개척교회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하지만 원주민 지도자 한 명이 알카에다 테러조직의 방계 조직인 알샤밥에게 이원철 선교사와 현지인 목사 제거를 요청했다고 경찰이 경고했다. 두 사람을 살해하면 현상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슬람 목회자가 저한테 와서 치과 치료를 받으며 ‘미스터 리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거듭 칭찬을 하더군요. 그 척박한 땅에서 이런 소리를 듣기까지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참 멋있는 선교사입니다. 사모님도 그 와중에도 항상 웃고 계세요. 지금도 생각만 해도 좋아요.”
김 장로는 2주 동안 케냐, 우간다, 말라위를 도는 강행군을 벌인 적도 있다. 또 한해 동안에만 페루, 코스타리카, 멕시코, 몽골, 러시아 그리고 모로코를 방문해 치아를 고쳐주며 복음을 증거하기도 했다. 파푸아뉴기니아 정글 마을을 방문할 때는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에 익사할 위기를 겪기도 했다.
오지 선교 여정을 이어온지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그의 스케줄에는 세계 각국의 험지 및 멕시코와 국내 선교지에 이르기까지 의료선교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김 장로는 매해 2주 정도의 오지 단기선교를 떠나고 멕시코로는 3~4회 의료선교를 간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LA 다운타운에서 매주 무료 치과 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돈 뿐만 아니라 인생의 시간도 십분의 일을 하나님에게 바치겠다는 그의 결단이 수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이번에 아프리카 여정에서 만난 영혼들 역시 그의 가슴을 예수의 명령으로 강하게 두들겼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여라.’
<미주한국일보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