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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장로(가운데)와 황규련 목사, 최애양 사모는 교회가 호스피스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생을 종종 마라톤에 비유한다. 죽음은 종착점에 골인하는 것이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영광의 순간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 땅의 삶과 이별하고 새 땅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교회가 없는 시골을 찾아다니면서 여러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양봉을 직접 하시면서 목회하셨죠. 그런데 중풍에 걸리셔서 고생하시다 소천하셨어요. 거동을 제대로 못하시니 중학생인 저도 간병을 했습니다. 가족 모두 힘든 시기였죠.”

목사였던 외조부는 병상을 지키는 손자에게 ‘위대한 유언’을 남겼다. “내가 비록 이래도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감사하구나.” 수십 년 전 기억을 꺼내면서 최승호 장로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느새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1.5세인 최 장로는 세인트빈센트 종합병원 응급실(ER)에서 긴급 환자들을 살리는 의사다. 그의 곁에는 항상 죽음이 가까이 있다. 개중에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인사도 못 남기고 떠나는 생명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허용된 환자들 중에도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

최 장로는 ‘그레이스 호스피스’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그레이스 호스피스의 안내장에 쓰인 슬로건은 ‘황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이다. 그 옆에는 영어로 ‘For Peace and Comfort with Grace’(은혜가 주는 평화와 평안을 위해)라고 적혀 있다. 생애의 끝자락에 다다른 환자들과 가족이 보다 안정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게 그의 신앙적 비전이다.

“간호사나 직원들이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함께 일하기 좋습니다. 일이나 비즈니스로만 생각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긍휼한 심정을 갖고 환자를 대하니까 정말 고맙죠.”

호스피스는 기본적으로 의사와 간호사, 목사, 소셜워커 등 네 명이 팀을 이뤄 진행된다. 이들은 질병으로 시한부 진단을 받은 환자의 집이나 병실로 찾아가 평온하고 의미 있는 죽음을 맞도록 돕는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간호사는 약물 투여 등 의료 업무를 담당한다.

또 소셜워커는 메디칼이나 메디케어, 보험 절차 등을 처리해 재정적 문제를 최대한 해결해 준다. 그리고 채플린이라 불리는 목사가 상담을 나누며 두려운 영혼을 어루만진다. 특정한 장소에 말기환자가 입원하는 한국식 호스피스와는 딴판이다. 이동식 X레이 기기 등을 동원해 ‘병원을 환자에게 가져간다’는 개념으로 움직인다.

“보험은 물론 연고자도 전혀 없는 중년의 불체자가 말기암 판정을 받은 적이 있죠. 갈 곳도 없는 분이었어요. 저희가 메디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돌봤죠. 나중에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다면서 하나님께 감사해 하시더군요.”

그레이스 호스피스에는 8명의 의사가 포진해 있다. 한인은 물론 이탈리아계, 유대인, 일본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의들이다. 또 기저귀, 침대보, 유동식, 연고 등을 환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큰 비용을 감수하면서 훨씬 많은 전문 인력을 투입하고 물품을 나눠주는 이유도 신앙적 배경 때문이다.



재정관리를 맡고 있는 최애양 사모는 특히 목회자들이 호스피스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도움이 절실한 이웃에게 교회가 중간에서 실질적 도움을 나눠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만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치매나 중풍환자도 가능하고 여러 증상의 환자들이 포함됩니다. 또 주치의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합병증으로 인한 증상은 전문의가 치료합니다. 목욕도 시켜주고 가족이 여행을 갈 수 있게 며칠간 돌봐 주는 서비스도 있어요. 호스피스 내용을 잘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한인이 많습니다.”

채플린인 황규련 목사는 그레이스 호스피스에서 수많은 말기 환자의 병상을 지켜왔다. 그 중에서도 홀로 죽음을 맞은 가난한 90대 흑인 할머니의 신앙고백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껏 지켜주셨고, 먹여주셨고, 백인들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돈도 명예도 마지막 가는 길에선 소용없더군요.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계속 자신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들어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할 말이 많은 목사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 절감합니다.”
문의 (213)989-1626
2016-2-18 미주한국일보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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