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도는 인간의 바람과 계획을 뛰어 넘어 예상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오직 창조주의 주권과 통치만 있을 뿐이다. 성실한 자녀는 그저 열리는 길을 가면서 소명을 실천한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김영욱 총장은 이민교회 목회자 출신이다. 전도사 시절부터 남가주에서 사역을 시작해 이후 가든그로브 장로교회를 개척했고 20년이 넘도록 이민사회와 고락을 나눴다. 당연히 남가주를 찾을 때마다 마치 제2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는 학부와 대학원 재학생이 1,600명이 넘는다. 특정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초교파 신학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28개 국가에서 온 70여명의 유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며 선교 사역자를 육성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 강변에 자리 잡은 캠퍼스는 해외 디아스포라 사역자들이 방문해 수시로 재충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김 총장은 항공선교의 개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민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미국 항공선교회(MFA)를 알게 돼 지난 1988년 처음으로 한국에 항공선교회를 도입하고 1992년에는 비행기까지 가지고 귀국했다. 지금도 한국 항공선교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는 항공선교훈련원을 개설했다. 미국의 MAF는 150여대의 항공기를 운영하면서 선교지에 인력과 물자, 의료 장비 등을 수송하는 긴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당시 비행기를 구입하는데 이민교회의 도움이 아주 컸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항공선교라는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공군 군종감을 지낸 임동선 목사가 힘을 내라고 격려했죠. 박희민 목사도 많이 도와주었고요. 한국에 항공선교가 뿌리를 내린 데는 미주 한인교회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항공선교훈련원은 지금까지 14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학생들은 2년 동안 신학과 선교교육을 이수한 뒤 미국의 무디 항공대나 캐나다의 프로비던스 항공대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는다. 현재도 7명의 학생이 프로비던스 항공대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초기에는 수륙양용 비행기에 의료진을 태우고 가서 낙도 오지 주민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했지요. 요즘에는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선교지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조종사로 일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선교에 동참하는 졸업생들이 퍼져 있어요.”김 총장은 학내 분규와 법정관리 등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4년 동안 신학교를 정상화하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2011년 총장으로 추대됐다. 이민교회에서 잔뼈가 굵고 선교에 헌신하던 교수가 대형 신학대 총장에 오른 것이다.
“그동안 대학이 갈등을 겪으면서 교수와 직원, 학생들 간에 첨예한 대립으로 상처가 많았습니다. 교수들은 노조 직원을 해고하라고 요구하고, 노조는 노조대로 주장을 펼쳤죠. 취임 이후 일주일에 하루씩 간부 직원들과 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불과 한 달 반이 지난 뒤 노조가 자진 해산을 결정했어요. 그러자 교수들도 앙금을 풀었고요. 화해가 이뤄진 거지요.”김 총장은 교수와 직원들과 함께 매일 새벽기도도 시작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기도의 제단을 지켰다. 나중에는 기숙사 학생 270명까지 동참해 아세아연합신학대에는 지금도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하루는 기도 중에 등이 따뜻해져서 돌아보니까 10여명의 학생들이 저에게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참 고맙고 감동적인 기억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세계로 나가라고 말합니다. 선교하면 좋지만 다른 일을 하더라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넓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라고 격려하고 있어요. 편협한 경쟁에서 벗어나 세계를 품는 청년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겁니다.”
2016-1-12 미주한국일보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김영욱 총장은 이민교회 목회자 출신이다. 전도사 시절부터 남가주에서 사역을 시작해 이후 가든그로브 장로교회를 개척했고 20년이 넘도록 이민사회와 고락을 나눴다. 당연히 남가주를 찾을 때마다 마치 제2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는 학부와 대학원 재학생이 1,600명이 넘는다. 특정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초교파 신학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28개 국가에서 온 70여명의 유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며 선교 사역자를 육성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 강변에 자리 잡은 캠퍼스는 해외 디아스포라 사역자들이 방문해 수시로 재충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김 총장은 항공선교의 개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민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미국 항공선교회(MFA)를 알게 돼 지난 1988년 처음으로 한국에 항공선교회를 도입하고 1992년에는 비행기까지 가지고 귀국했다. 지금도 한국 항공선교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는 항공선교훈련원을 개설했다. 미국의 MAF는 150여대의 항공기를 운영하면서 선교지에 인력과 물자, 의료 장비 등을 수송하는 긴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당시 비행기를 구입하는데 이민교회의 도움이 아주 컸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항공선교라는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공군 군종감을 지낸 임동선 목사가 힘을 내라고 격려했죠. 박희민 목사도 많이 도와주었고요. 한국에 항공선교가 뿌리를 내린 데는 미주 한인교회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항공선교훈련원은 지금까지 14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학생들은 2년 동안 신학과 선교교육을 이수한 뒤 미국의 무디 항공대나 캐나다의 프로비던스 항공대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는다. 현재도 7명의 학생이 프로비던스 항공대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초기에는 수륙양용 비행기에 의료진을 태우고 가서 낙도 오지 주민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했지요. 요즘에는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선교지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조종사로 일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선교에 동참하는 졸업생들이 퍼져 있어요.”김 총장은 학내 분규와 법정관리 등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4년 동안 신학교를 정상화하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2011년 총장으로 추대됐다. 이민교회에서 잔뼈가 굵고 선교에 헌신하던 교수가 대형 신학대 총장에 오른 것이다.
“그동안 대학이 갈등을 겪으면서 교수와 직원, 학생들 간에 첨예한 대립으로 상처가 많았습니다. 교수들은 노조 직원을 해고하라고 요구하고, 노조는 노조대로 주장을 펼쳤죠. 취임 이후 일주일에 하루씩 간부 직원들과 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불과 한 달 반이 지난 뒤 노조가 자진 해산을 결정했어요. 그러자 교수들도 앙금을 풀었고요. 화해가 이뤄진 거지요.”김 총장은 교수와 직원들과 함께 매일 새벽기도도 시작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기도의 제단을 지켰다. 나중에는 기숙사 학생 270명까지 동참해 아세아연합신학대에는 지금도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하루는 기도 중에 등이 따뜻해져서 돌아보니까 10여명의 학생들이 저에게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참 고맙고 감동적인 기억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세계로 나가라고 말합니다. 선교하면 좋지만 다른 일을 하더라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넓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라고 격려하고 있어요. 편협한 경쟁에서 벗어나 세계를 품는 청년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겁니다.”
2016-1-12 미주한국일보
<유정원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