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은 하나님의 눈물이 젖어 있는 땅이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구의 산골 마을이다. 세계의 누구도 눈여겨 볼 이유가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시골 버스 정류장보다 못한 카불 공항에 수많은 나라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9.11 테러 이후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나토(NATO) 연합군 국가들의 국기가 힌두쿠시 산맥 자락을 바라보며 휘날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미국은 물론 스웨덴 스위스 독일 에스토니아 영국 등 나토 연합군이 진주하고 있다. 공항과 카불 시내는 주로 유럽 군대가 관할하고 산악지역 전투는 미군이 맡는 형세다.
카불공항에 일장기는 걸려 있지 않지만 곳곳서 일본국기가 눈에 띤다. 공항 셔틀버스 X레이 검색대 마다 일장기가 그려져 있다.
한결같이 '일본 국민으로부터(From the People of Japan)'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2002년 도쿄에서 아프가니스탄 재건국제회의를 유치할 정도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일본의 구호품들이다.
산악국가 아프가니스탄은 예로부터 영국과 러시아 등 열강의 세력이 충돌하던 현장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름길이자 난공불락의 요새지로 양보 못 할 요충지로 여겨진 까닭이다.
구 소련과 중국 파키스탄과 이란 등 국경을 맞댄 나라들의 면면을 보면 21세기 아프가니스탄의 전략적 가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거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이 알려진 이후 아프간의 '주가'는 급등했다.
언뜻 강국에 둘러싸인 한반도를 연상시키는 이 나라에 한인 선교사들이 펼치는 사랑의 손길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카불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카불공대 인근에 위치한 코리안 게스트 하우스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 있다.
문 앞에는 무장한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지만 발을 들여 놓으면 딴 세상이다. 정원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자그만 태권도 도장도 차려져 있다. 여기는 정부 기업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아프간 한인들에게 고향 집 같은 곳이다. 일단 집 안에 들어오면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여행자들은 발을 뻗고 잘 수가 있다.
아프간 정세와 온갖 소식도 여기서 주고받는다. 카불을 떠나 오지에서 헌신하는 사역자들이 돌아 와 휴식을 취하는 곳도 이 집이다. "아프간 영혼을 섬기는 사역자들끼리 '글로벌 미션 아프가니스탄'이란 동역 모임을 만들었어요. 지금 삼십 여명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에선 교회나 단체 혼자선 사역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서로 사역을 도우며 힘을 합치는 거죠."
본국의 대표적인 구호단체 한민족복지재단의 아프간 사역을 지휘하고 있는 홍성집 목사는 남가주 출신의 1.5세 사역자다. LA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텍사스에 부모가 거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13년간 활동한 뒤 아프간에 온 지 5년이 흘러 현지어에도 능통하다.
코리아 게스트 하우스는 홍 목사를 중심으로 한인 사역자들이 뭉쳐 이뤄낸 동역의 결실이다. 출장 여행자들은 물론 한인 사역자들의 사랑채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서로 파송한 교회나 단체는 다르지만 아프간을 향한 사랑과 사역을 위해 양보하고 협력하면서 동고동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얻는 게 훨씬 많더라고요."
도시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우물 하나를 만들어 주는 사역도 여러 사람이 그룹을 이루면 훨씬 효과적으로 추진된다. 누구의 사역이라고 해서 남의 일로 외면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농번기에 이웃 논의 모내기를 돌아가며 해 주듯 사역의 품앗이를 통해 서로 열매를 키워가는 셈이다.
본국의 장로총연합회와 함께 벌이는 중동선교 연합사역을 위해 요르단 이스라엘 아랍에미레이트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선교현장을 방문한 남가주장로협의회 장로들은 협력 사역의 결실에 감탄을 연발했다. "세상 눈으로는 척박하기만 한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영글고 있는 사역자들의 수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여기서 자녀를 키우며 터전을 일구고 사역을 펼친다는 게 오로지 순종과 헌신의 결심 때문 아닙니까."
장로협 강동희 회장은 새삼 한인 크리스천의 힘을 확인했다면서 미주와 본국 교회가 힘을 합치면 중동선교에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카불행 탑승권에는 좌석이 지정되지 않는다. 먼저 타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으면 그만이다. 떠날 때는 카불로 들어오는 비행기가 도착해야 몇 시간 뒤 그 여객기로 떠날 수 있다.
그래도 항공기는 늘 만원을 이룬다. 그 안에는 환란의 와중에 이익을 취하려 오가는 이도 많지만 하나님의 눈물 젖은 땅을 옥토로 일구려 찾아드는 발길도 끊임이 없다.
2006/06/08
아프간= 미주 중앙일보 유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