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업의 쇠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장을 찾던 발걸음은 이제 온라인 주문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이런 물결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레이트아메이칸그룹’은 기업의 폐업 및 청산 작업을 맡아 진행시키고 수익을 올리는 회사다. 인사 및 재정 정리는 물론 의류 진열대나 마네킹, 식당 기기 등 소매점에서 쓰던 각종 물품을 매각하는 것도 업무 중의 하나다. 라이언 멀컨리 부사장은 수십 년 동안 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최근 수년간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회사 일도 바빠졌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지난 2008년 불경기 때도 그랬고 과거 불황 때는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물건을 사서 창고에 보관하다가 경기가 나아지면 되팔려는 손님들이었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없어졌어요. 이제는 아예 소매업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인터넷이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계속해서 바꿔가고 미 전역에 걸쳐 수많은 소매업 매장이 문을 닫고 있다. 올해 들어 4월 중순도 채 안되는 기간에 5,994개 소매업체가 폐업을 선언했다. 지난해 전체 기간 동안 문을 닫은 5,854개를 벌써 추월한 것이다. 신발 소매업 체인 ‘페일리스슈즈’, 어린이 의류 소매업체 ‘짐보리’ 등이 지난 몇 달새 파산신고를 했는데 올해만 이미 두 번째이다.
그나마 재정 상태가 양호한 소매업체들도 리스 기간이 끝나는 대로 매장을 닫고 있다. 살아 남은 업체들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고객을 공략한 케이스다. 그리고 온라인 거래를 통해 고객 만족에 성공한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새로 창업하고 문을 여는 소매업체들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전국적으로 2,641개 매장이 새로 개장했다. 이 역시 지난해 3,239개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치다. 그나마 가장 많이 문을 연 소매업 가게는 ‘달러 스토어’같은 할인 매장 체인들이다. 이조차 e커머스 온라인 영향을 덜 받는 지역에 국한돼 있다. 게다가 ‘워비파커’같은 온라인 소매업체는 소규모이긴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까지 열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매장을 찾는 고객이 급감하면서 영업이 뚝 떨어진 소매업체들은 40% 세일 등 파격적인 대응책을 내놓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일단 파산신고를 접수했다 하면 빛의 속도로 매장들이 문을 닫게 된다. 지난해에만 폐업 세일을 한 기업들이 본톤, 토이자러스, 샬롯루스, 짐보리, 페일리스슈즈 등을 망라했다.
종업원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는 건 물론이다. 그레이트아메리칸그룹과 타이거캐피틀그룹은 폐업 관리 업종에서 몇 안되는 회사들이다. 지난해에도 토이자러스, 본톤 등의 청산 작업을 두 회사가 모두 맡아 진행했다. 청산 과정에서 폐업하는 회사에서 확보한 자금은 보통 채권자들에게 먼저 돌아가기 마련이다. 타이거캐피틀그룹이 지난해 매장을 폐업하는 작업에서 처리한 자산만 50억 달러에 달한다.
타이거캐피틀그룹의 COO(최고운영책임자) 마이클 맥그레일은 “폐업 과정에서 결국 중요한 건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더 오래 매장 문을 열고 버틸수록 값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행에 옮기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재빨리 움직여야죠. 언제 시작하고 언제 발을 뺄지 그게 전부입니다.”
샤핑몰에 의류 매장을 가진 경우에는 5주 미만, 가구업체는 폐업을 완료하는데 12주 정도가 걸린다는 게 맥그레일 COO의 설명이다. 보석 소매업체의 경우 기간이 조금 더 걸려 20주까지 소요될 수 있다. 매장에서 가구는 물론 보석 케이스나 삽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처리한다.
그레이트아메리칸그룹의 경우 가급적 최단 기간내 폐업을 끝마치는 걸 선호한다. 멀컨리 부사장은 종업원을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가능한 최후의 순간까지 위탁 기업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직원들에게도 새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폐업 선고를 한 이후에도 두 달 정도 근무한 직원에게는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한다.
열여덟 살인 시드니 블레어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애쉬빌 몰에 입점한 여성 의류 및 패션 업체 ‘샬롯루스’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난 2월 회사는 파산 신고를 접수했다. 3월초 매장은 폐업 과정에 들어가서 월말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샬롯루스’는 파산 신고 이후에도 회사를 살 구매자를 찾지 못했으며 400개 이상의 점포를 문 닫는다고 발표했다.
모든 청산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마지막 주에는 고객들과 뒤섞여 짐을 쌀 정도였다. “어떤 손님들은 종업원의 근무 태도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정신이 없었죠. 우리 모두 일자리를 잃는 참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매장을 이리저리 다니고 일하는 거였죠. 매장이 점점 비어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슬펐어요.”
폐업하는 업체에서 남은 재고를 온라인 시장을 통해 처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덕분에 온라인 e상거래는 영업 영역이 오히려 더 넓어졌다. 그레이트아메리칸그룹은 해당 업체의 웹사이트를 비롯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심지어 아마존 등에 대대적으로 폐업 세일 광고를 한다. 대폭 할인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폐업 세일은 소비자의 구매욕을 촉진하고 마지막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다. 따라서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끌고 간다.
맥그레일 COO는 소매업의 변화를 ‘점진적이지만 꾸준한 혁신’이라고 본다. “지금은 수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고 있지만 곧 이런 일도 줄어들고 새로운 물결이 찾아 올 겁니다.” 하지만 그 역시 기존 방식의 소매업이 발 디딜 여지는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잘 나가는’ 샤핑몰과 ‘그저그런’ 자리에 위치한 몰과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폐업을 하지 않아도 수많은 소매업체들이 매상이 떨어지는 상권에서 매장을 철수하고 있다. 의류업체 ‘갭’은 앞으로 2년 안에 230개 매장의 문을 닫을 예정이다. 그리고 온라인과 아웃렛 그리고 일반 매장 사이의 영업 비중을 재조정하는 중이다.
속옷 업체 ‘빅토리아시크릿’도 올해 북미 시장에서 53개 매장의 문을 닫을 계획이다. 이 회사는 아직도 900개가 넘는 매장을 갖고 있다. ‘페일리스슈즈’도 5월 말까지 북미 시장에서 2,300개 매장을 철수할 계획이다. 문 닫는 매장 수로는 가장 큰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짐보리’는 지난 1월에 749개 매장을 폐장했다.
멀컨리 부사장은 “불황 때문도 아니고, 부실한 경영 탓만도 아니다”면서 “그저 소비자의 구입 패턴이 바뀐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소매업 자체가 죽은 게 아니라, 그저 변화하는 중이고, 우리 모두 그 와중에 있다”는 것이다.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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